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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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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춘원연구학회 춘원연구학보 춘원연구학보 제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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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본고에서는 1920년대 초반 이광수의 민족애와 인류애에 주목함으로써 돈키호테처럼 지고한 이상을 추구하던 이광수 고유의 특이성을 부각시키고 그것의 당대적 의미를 비판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3·1운동을 통해 발현된 조선인의 민족애는 전후 세계 평화를 위한 인류애로 확대될 수 있었다. 또한 당시 인류애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뿐만 아니라 톨스토이의 종교적 인도주의와도 결부되어 이해되었다. 그런데 관동대지진 이후 일제의 선전 활동에 의해 조선에서 ‘인류애로서의 민족애’는 ‘민족을 초월하는 인류애’와 경합하게 되었다. 이광수는 이러한 논쟁에 가담하기보다는 부조와 사랑으로부터 인류 구제의 길을 제시하고, 기독교적 인도주의 사상에 근거한 인류애로서의 민족애를 형성하고자 했다. 󰡔재생󰡕은 철저한 섬김과 자기희생의 실천적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내포한 실험적 작품이다. 순영의 반복되는 타락과 회개는 자기희생의 어려움을 노정하며, 봉구의 서사는 바람직한 민족애에 대한 고찰을 유도한다. 이광수가 형성하는 민족애는 저항적 민족주의의 감정적 자원이 되기 어렵고, 관동대지진 이후 ‘민족애를 초월한 인류애’를 주창하던 일제의 논리에 포섭될 여지도 다분했다. 그럼에도 “사랑의 새 종교”를 예비하는 민족의 성직자라는 자의식을 지녔던 이광수는 이상적 민족애에 대한 자신의 향상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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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5-02-0936037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