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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본 연구는 리영희의 중화인민공화국(이후 당시의 쓰던 표현대로 중공)에 대한 재인식을 1960년대 중반의 주요 국내외적 정세변화의 맥락 속에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리영희가 당시 주목한 통일환경의 변화를 논의한다. 리영희가 《조선일보》정치부 기자 및 외신부장으로 활동한 1964년-1967년 시기는 국제질서의 다극화(multipolarity)와 중공의 국제적 부상(rise)이 한국의 안보와 통일정책에 변화에 대한 본격적인 압력으로 작용한 시기였다. 특히 1964년 10월 중공의 첫 번째 핵실험을 이후 한일회담의 타결과 한미일 반공 전선의 강화, 美 존슨(Lyndon Johnson) 대통령의 베트남 전쟁확전, 그리고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대혁명과 반소 수정주의 투쟁이 겹치면서 한국에서는 중공의 위협을 어떻게 정의하고 이에 대해 대처할 것인지 논의가 가속화되었다. 리영희는 기존의 ‘호전적 중공 인식’을 비판하고 ‘비호전적 중국 인식’ 속에서 (1) 중공의 핵 보유가 공산주의 수출의 무기가 아닌 반제국주의의 정당한 무력이며 (2) 중공이 베트남에 직접 무력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시에 리영희는 국제적으로 비등하고 있는 ‘두 개의 중국’에 비추어 유엔에서의 한국문제가 남북 유엔 동시가입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조기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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