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소속 기관 / 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58호
오류 신고하기

피인용 0

검색

    초록·키워드

    조선후기 지배층을 이루는 한 축이었던 무관의 사회적 지위는 문관 위주 관직체계의 위계와 萬科현상으로 인해 격하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관은 세습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를 이용하여 배타적 특권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이었다. 비록 양란을 거치며 비사족 출신 무과급제자가 배출되었지만, 여전히 서반 청요직으로 진출하는 데에는 무반 가문의 배경이 필요했다.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지 못한 사족 가문은 사회적 지위의 하락을 저지하기 위해 무과로 전향하기도 했다. 무과는 유동적인 조선후기 계층질서 속에서 사족이 사회적 권력과 자원을 유지 및 회복하기 위한 경로 중 하나로 선택되었다.
    정조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순조대까지 관직생활을 한 노상추는 이러한 경로를 선택한 인물이다. 향촌에서 영향력을 잃고 서자 집안과 부유한 상민의 도전에 직면한 노상추는 다시금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조부의 선례를 따라 무과를 치렀다. 노상추는 영남 남인 출신이라는 지역 · 정치적 한계를 자각하고 있었다. 급제 후에도 선전관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노상추는 비사족 무과급제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또 무관으로서 노상추는 문관과의 위계를 감내해야 했다.
    노상추에게는 여러 가지 귀속의식이 있었는데, 지방출신, 남인, 무관이라는 세 가지는 노상추가 관직생활에서 도성출신, 노론, 문관을 접하며 자신의 약점이라 여기게 된 요소들이다. 반면 사족, 실직 관원이라는 두 가지는 노상추가 비사족, 음직 · 무직 혹은 과거급제를 하지 못한 사족들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게 하는 요소들이었다. 노상추가 가진 열등감과 우월감은 노상추가 당대 계층질서 안에서 자신을 어디에 위치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노상추는 조선후기 무관의 사회적 지위를 실재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서 그의 계층의식에 대한 분석은 세분화되고 있던 조선후기 계층질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UCI(KEPA) : I410-151-25-02-093726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