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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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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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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글에서는 355년 고구려와 전연이 조공-책봉관계를 형성하기 전, 양국 간의 관계를 탐색하기 위해 319년과 339년 기사에서 확인되는 ‘盟’에 주목하였다. ‘盟’을 키워드로 삼아 4세기 전반 고구려와 전연 관계의 변화를 탐색하고, 양국 관계를 구조적으로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전연은 고구려가 요동 진출을 꾀하는 과정에서 충돌한 첫 번째 상대였다. 320년까지 고구려는 요동 일대를 두고 전연과 항쟁하였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이때의 충돌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고구려는 전연과 첫 번째 ‘盟’을 맺었다. 이러한 모습은 339~341년에도 확인된다. 고구려와 후조가 연합하여 전연을 공격하자 전연은 고구려의 新城을 공격하였다. 이에 고국원왕은 전연에게 ‘盟’을 요청하였다. 두 번째 ‘盟’이었다.
    이처럼 고구려는 전연과 20년의 시차를 두고 두 번의 ‘盟’을 맺었다. 모두 고구려가 요청하고 전연이 이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로 보아 두 번의 ‘盟’은 형식상 동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盟’으로 규정된 내용이나 성격은 시기별로 차이가 있었다.
    첫 번째 ‘盟’에서 주로 논의된 것은 犯境의 문제였다. ‘盟’이 규정한 것이 경역의 침범을 금한다는 물리적 요소에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盟’에서 전연은 犯境의 문제와 함께 태자의 입조를 요구하였다. 양국 간의 위상 차이를 가시화할 수 있는 의례 동반을 원하였던 것이다. 이후에는 고구려가 전연에 파견한 質子도 확인된다. 두 번째 ‘盟’ 이후, 양국 관계에서 위계적 면모가 강조되었음을 볼 수 있다.
    표현은 동일하였으나 두 번의 ‘盟’으로 규정된 양국 관계는 시기별로 차이가 있었다. 여기에는 公國에서 王國, 帝國으로 자기 변신을 꾀하며 중원왕조로 거듭나고자 하였던 전연의 체제 변화, 그리고 고구려와 전연의 국력 차이 등이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고구려와 전연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았으며, 각국의 대내외적 상황과 연동하며 끊임없이 변화하였다. 한편 고구려 역시 국제정세에 발맞추어 관계의 변화를 꾀하였다. 전연과의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고구려의 대응은 고구려 국제관계의 다층적 면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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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5-02-093739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