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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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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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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글에서는 8세기 중반 집사부의 한식 관명 개정과 9세기 전반의 집사성 승격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인지 분석하고, 사료상에서 보이는 집사부 또는 집사성의 활동양상을 통해 직무 범위와 양상을 검토하였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8세기 중반 집사부의 한식 관명 개정은 唐의 3성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그 중 尙書都省의 비중이 높았다. 8세기 중반 이후 집사부의 활동에서는 설치 당시의 직무였던 문서 출납에서 파생된 문서 작성과 신라 행정기구 전체를 대표하는 문서의 발신을 확인하였다. 이 밖에 인사의 결정과정에 관여하여 안건을 심의한 흔적은 확인한 반면 외교에 관여한 흔적은 확인하기 어려웠고, 집사성이라는 명칭이 별칭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엿보였다.
    집사성 승격 이후인 9세기 전반 이후의 양상을 보여주는 사료를 분석한 결과, 9세기에도 일본과 공문서를 주고받는 과정을 볼 때 외국과 지방에 대하여 신라의 행정기구를 대표하여 공문서 작성과 출납을 맡은 것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외교에는 간접적 관여의 가능성만 있었으며, 공식적으로 집사성이라는 명칭이 계속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집사부는 집사성 승격 이후 이전부터 지속되던 중앙행정기구 대표로서의 위상을 강화시켜 나갔다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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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5-02-093748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