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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73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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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본고는 조선 후기 윤지술과 사현사를 둘러싼 논란을 분석했다. 경종 즉위 후 장의 윤지술은 이이명이 찬술한 숙종의 지문 가운데 희빈 장씨 사사와 병신처분에 관한 서술이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일견 과격한 윤지술의 행동은 왕위 계승이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 사친에 관한 군주의 의도를 확인하려는 시도로 이해되었다. 기존 당론서와 연구에서도 해당 사건이 자주 언급되었음에도 윤지술이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된 원인 내지 이유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본고는 이를 한 개인의 돌발 행동이 아니라 노론 내 정치 세력의 분기가 밖으로 표출된 결과로 파악하고자 했다.
    이에 더해 윤지술의 사후 그의 사현사 배향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사현사라는 공간이 지닌 다양한 의미를 함께 고찰했다. 윤지술의 사망 후 그의 정치 행위는 노론계 전체의 의리 속에서 서술되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사현사였다. 사현사는 본래 국왕 숙종이 자신이 기도한 효과를 명확하게 표출하기 위해 제안한 공간이었다. 해당 공간에 노론의리를 표상하는 윤지술이 들어오면서 문제는 복잡해졌다. 이에 더해 이후 군주들의 정치적 의도와 개인적 감정, 지방 지식인의 인정 욕구 등 여러 시도가 더해지면서 사현사는 정치적 공간으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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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5-02-09400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