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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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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73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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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본 글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와 밀정의 양가(兩價)적 삶을 살았던 엄인섭을 고찰하고자 한다. 엄인섭은 영월 엄씨로 1875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출생하였다. 이른 시기에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하여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원호인이었다. 엄인섭은 구한말 국내진공작전 시 좌영장, 권업회 간부, 안중근 유족 구제회로 조직된 공동회와 비밀결사 ‘21의형제’ 활동 등 조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섰던 항일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서는 《대양보》 인쇄활자 절취, 일제 정탐의 석방, 항일 민족운동가의 전향 공작 등 일본의 밀정으로 대활약하였다. 그로 인해 독립운동의 역량을 약화시키고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가져온 장본인이었다.
    항일 민족운동가들은 일제 당국에 의해 ‘불령선인(不逞鮮人), 배일선인(排日鮮人), 폭도(暴徒)’ 등으로 불리었다. 이들의 회유와 탄압을 위해 밀정들을 활용하였다. 엄인섭은 스스로 밀정의 길을 선택하였다. 훗날 1920년 간도15만원사건으로 실체가 알려지기까지 독립운동에 엄청난 손실과 해악을 가져다 주었다. 엄인섭은 러시아의 이익에 부합되는 반일 성향의 인물로, 혈연적 모국의 독립을 열망하는 항일 민족운동가로, 식민지 당국인 일본에게는 충실한 밀정으로 다양한 가면을 사용하였다. 동지들을 밀고하고 비밀 정보들을 팔아 일제와 유착관계를 형성하였다. 그 속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사리사욕을 추구한 친일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엄인섭은 현재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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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5-02-094001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