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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慶尙國立大學校)
저널정보
동아인문학회 동아인문학 東亞人文學 第72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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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논문은 1902년 송병순이 지리산을 비롯하여 경남 서부 일대를 유람하며 남긴 기록을 통해 근대 전환기 유학자들의 시대 인식을 고찰한 것이다. 송병순은 1902년 2월 16일 길을 나서 3월 28일 집으로 돌아왔다. 약 40일간의 여정으로, 충북 옥천→전북 무주→경남 거창→합천→산청 지리산→하동→구례→진주→함양→안의→거창을 경유하는 코스였다.
    지리산 유람에 나타난 시대 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선현에 대한 존숭 의식이다. 그는 김굉필, 정여창, 최숙량, 조식 등 선현들의 유적지를 방문하며 그들의 도학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했다. 이는 유학을 통해 조선의 정체성을 지키려 했던 연재학파의 입장을 보여준다.
    둘째는 대명의리에 입각한 위정척사 의식과 충절 인사에 대한 추모이다. 송병순과 동행인들은 충절 인사의 유적지를 탐방하며 대명의리와 충의 정신을 되새겼다. 김회석은 천왕봉을 유럽을 압도하는 웅장한 공간으로 묘사하며 소중화 의식을 드러냈고, 송병순은 용천정사에서 대명의리를 강조했다. 또한 정몽주를 추모하며 ‘華夷의 구별’을 떠올렸다.
    송병순의 경남 서부 일대 유람은 연재 문인과 문인의 친족, 노사학파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함으로써 학파의 결집력과 외연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강우 문인들은 송병선의 《연재집》과 연재학파 문인록인 《계산사복록》의 간행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만동묘 제향을 복구하는 데도 송병순과 함께함으로써 연재학파 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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