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소속 기관 / 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19호
오류 신고하기

피인용 1

검색

    초록·키워드

    본 논문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소재 「逸聖尼師今 下令」의 성격과 형성과정을 고찰함으로써, 신라 사치 금령의 역사적 전개 속에서 「일성이사금 하령」의 존재의미를 규명하려 한 것이다.
    사료상 「일성이사금 하령」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전자가 農本과 勸農에 대한 강조라면, 후자는 민간의 귀금속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일성이사금 하령」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前漢 景帝 後 3년(기원전 141)의 사치 규제와 매우 유사하다. 그렇다면 2세기 전반 신라 사회에 「일성이사금 하령」이 실재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비교적 가까운 시기인 後漢의 사치 규제보다도 훨씬 앞 시기의 사례가 선택적으로 활용되었다면, 이는 중국 전적이 수입된 이후의 사료적 보입 내지 粉飾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성이사금 하령」과 전한 경제의 사치 규제 사이에는 서사적 측면에서 冬雷라는 교집합이 확인된다. 「일성이사금 하령」은 災異에 대한 신라 조정의 대응이라는 서사에서 일성이사금 11년 봄 2월 항목에 배치되었던 것이다.
    「일성이사금 하령」의 보입·분식은 기본적으로 天人感應論과 五行, 특히 재이와 漢代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한 여건이 충분히 성숙한 시점으로는 8세기 전반이 주목되는데, 이 시기는 개원 2년(714) 唐 玄宗이 전한 경제의 조칙을 참고하여 사치 규제를 반포한 시점과도 교차된다. 더불어 이 무렵 신라에서는 上代에 대한 활발한 지적 탐구 분위기와 맞물려 『國史』의 改修가 진행되고 있었다. 「일성이사금 하령」의 보입 및 분식은 바로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려되었을 것이다.
    결국 「일성이사금 하령」은 신라 사회에 실재한 법령으로 볼 수 없다. 대신 이 하령은 中代 신라에 보다 정제된 형태의 천인감응론적 재이론과 그에 기반한 사치 금령 인식의 존재를 시사하는 사례로 음미되어야 한다. 「일성이사금 하령」은 신라 사치 금령 인식의 성립 지표로서 존재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단 「일성이사금 하령」은 사서의 개수 과정에서 등장한 관념의 소산일지언정, 사치 금령에 대한 인식의 발로 그 자체는 하대 초 「애장왕 교서」와 「흥덕왕 교서」 등장의 전야가 되었다.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UCI(KEPA) : I410-151-26-02-094322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