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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전 주청사가 명나라 천자로부터 인조 책봉에 대한 승인은 받았으나 고명과 면복을 받아오지 못했으므로 『죽천행록』의 표현대로 ‘허행(虛行)’ 혹은 ‘허환(虛還)’에 불과했다. 인조의 책봉에 사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고명(誥命)과 면복(冕服)을 받기 위해 사은겸주청사(謝恩兼奏請使)를 급히 꾸려 보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중국 천자로부터 ‘책봉 승인’의 증거인 ‘고명과 면복을 받아오는 일’은 이덕형 사행이 완수해야 할 최고의 임무였고, 단순한 고난을 넘어 죽음까지 불사해야 할 절체절명의 사명이었다. 중국 체류 기간 내내 중국 인사들과 갈등 및 충돌을 빚었으며, 해로 노정에서는 자연현상과의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 갈등과 충돌은 서사성의 바탕이며, 기록자의 능력이나 관점에 따라서는 뛰어난 서사 전략을 통해 현실의 기록이 긴장감 높은 서사물로 바뀌는 건 당연했다. 『죽천조천록』의 전체 서사는 하나의 중심 서사와 두 개의 주변 서사, 하나의 부가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고명과 면복의 획득’이 갈등과 투쟁의 결실이라면 그것이 이루어진 부분은중심 서사다. 왕복 해로 노정의 험난함을 또 다른 갈등과 투쟁으로 그려낸 부분을 주변 서사, 승리의 결과가 또 다른 사건으로 확대·비화되어 주인공 죽천에게 부여된 새로운 시련과 궁극적인 승리로 그려낸 부분을 부가 서사라 할 수 있다. 텍스트속의 몇 가지 사실들을 다각도로 검토하여 『죽천조천록』의 서술자(敍述者)가 미수 허목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더욱이 ‘허목이 조선조 3백 년 동안 글재주로 제일이라 할 만하나, 서사에는 뛰어나지만 의론에는 부족하다’는 성호 이익의 평가와 함께 미수의 자찬 문집 『기언』에 실려 있는 「우찬성죽천이공덕형묘지명」·「홍문관수찬이공묘갈명」등 죽천과 그의 아들 행원에 대한 구묘문들을 볼 때 ‘『죽천조천록』을 허목이 서술했다는 사실’은 더욱 확실해진다. 사례로 분석해 보인 「우찬성죽천이공덕형묘지명」 또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의 연결을 통해 죽천의 인품과 충성심, 재능의 출중함 등을 실감 나게 그려보인 서사적 성향의 글이라는 점에서 허목의 글쓰기 성향과 부합한다는 사실과, 『죽천조천록』은 허목의 서사 전략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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