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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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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어중문학회 중어중문학 中語中文學 第102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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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채련사(採蓮詞)는 채련곡의 오랜 전통을 계승하여 당오대 시기에 사(詞)의 장르적 특성을 확립하고 송대에 본격적으로 창작되었다. 남조 궁중 악무로 변모했던 채련곡은 송대에 궁중과 문인사회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본고는 강남 문화의 대표인 채련사가 어떻게 송대 궁중 및 문인 문화로 변모했는지 그 활용 양상과 의미를 문학, 음악, 무용의 세 방면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문학 방면에서는 송 초 안수(晏殊)가 어가오 를 통해 채련사를 수상 연회의 문인 교유 및 송별의 양상으로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규명했다. 특히, 남녀유희의 의미가 연꽃과 문인의 관계로 치환되면서 남송 채련사에서는 순수한 수경 묘사가 주를 이루는 영화사(咏花詞)의 새로운 범주가 대두되었다. 음악 방면에서는 유영(柳永)의 채련령 이 대곡 사조로 활용된 후, 남송 사호(史浩)는 남녀의 이별 장면을 선녀의 귀환으로 변모시켜 대곡의 도불(道佛) 문화적 성격을 회복하며 대곡 가사의 계보를 확립했다. 무용 방면에서는 채련사가 대무 가사로 활용되었다. 호수 안의 채련녀와 어부는 즐거운 인간 세상을 표방하며 정치적 의미의 ‘태평성대’ 찬미와 결부되는데, 이는 송대 대무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었다. 이처럼 송대 채련사는 본래의 남녀 유희적 성격을 송대의 시대성에 맞게 변용(變容)으로써 송대 문화로 거듭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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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6-02-095640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