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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경남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아연구 아세아연구 제68권 제4호(통권 제2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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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10-12세기 동아시아 외교에서 확산되던 맹서는 국교수립, 성문규약, 평화조약이라는 특성을 지니는 문서로 이의 보장을 위해 협정 말미에 “위약시 천벌”에 대한 서약이 덧붙었다. 금조는 맹서를 대외관계에 적극 이용하였고 맹서의 위약을 북송 멸망의 명분으로 삼기도 했다. 금조는 고려에도 맹서 체결을 요구하였는데 그 이유는 고려의 여진정벌 당시 맺은 굴욕적인 맹서를 갱신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맹서가 자국을 패권국으로 만들어준 데다가 이의 개정을 고려에 반강제적으로 강요하였기에 금조는 고려와의 맹서를 무겁게 받아들였고 맹서관계를 파탄 낼 수 있는 고려와의 충돌을 극단적으로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금조가 고려와의 관계에서 유독 충돌을 회피했던 것은 송, 서하와 달리 고려와의 전쟁에서 군사적 승리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으로 재정적인 곤경 속에서 승전에 대한 확신 없이 고려까지 장거리 원정을 단행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에 군사적 충돌이 맹서관계 파탄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유화책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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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6-02-095578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