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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 종전 직후 동아시아에서는 근대 제국/식민지 체제에서 발달한 구식민지인의 ‘에스닉 국민주의’(ethnic nationalism)가 급격하게 고조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하여 대전 승리자인 미국은 자신의 세계 패권(覇權, hegemony)을 확립하고자 반식민주의 정책을 실행하였다. 예컨대, 미국은 일본 제국 신민들을 ‘원(原)출신지’에로 송환해 ‘차별적이고 위계적인 다수 에스닉(ethnic)으로 구성된 국민국가’였던 일본 제국을 해체하였다. 이와 함께, 미국은 미군의 지배하 군정이 실시되고 있던 한국과 일본에서 국민을 에스닉화하는 혈통주의(jus sanguinis) 국적법과 국민 주권을 규정하는 헌법, 또 국민의 주권 행사 방식과 절차를 규정하는 선거법을 제정하여 법제적으로 주요 에스닉 단위의, 국민 주권의 국민국가를 건설하였다.
이와 함께, 전후 중화민국의 제도적 변화 또한 주목된다. 중화민국은 1928년에 ‘혈통주의’ 국적법을 제정해 자신의 국민을 규정하였지만, 삼민주의의 ‘훈정기’(訓政期) 규정에 따라 국민의 주권성을 부인하였다. 하지만 제2차 대전이 끝나고 1947년에 중화민국은 제헌(制憲)국민대회를 통해 국민 주권의 헌법을 제정하고, 다음 해 입법 의원 선거에서 선거권∙피선거권의 행사자, 즉 주권 소유∙행사의 주체로서의 국민을 확립하였다. 이로써, 동북아시아에는 일본인과 중국인, 또 한국인이라는 주요 에스닉을 주제적 단위로 하는 국민국가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종전 직후부터 전개된 미∙소 냉전은 ‘주요 에스닉을 주체로 하는 국민국가 체제의 완전한 실현’을 ‘저지’하였다. 한국인을 주체적 기반으로 하는 두 개의 국민국가, 즉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 동일한 중국인을 기반으로 한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제2차 대전의 승리자이자 전후 세계의 패자(霸者)인 미∙소의 전후 이념적 헤게모니(hegemony)와 권력적 패권(覇權) 경쟁인 냉전은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소위 ‘일(一) 민족 일 국가’의 ‘민족자결주의’ 원리의 온전한 실현을 ‘저지’하고 ‘지체’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냉전은, 뒤늦게 1971년에 야 이루어진 중∙일 국교 정상화의 사례에서처럼, ‘에스닉 국민국가 간의 체제’ 수립과 가동을 지체시켰다. (물론, 지역 내 국가 간 체제의 수립∙가동의 지체에는, 뒤늦은 1964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가 보여주듯이, 냉전의 효과와 함께 종전 이전의 제국/식민지 체제의 효과 또한 작동하였다.)
전후 동아시아의 체제 변동 과정은, 물론, 폭력적이었다. 즉, 그 과정은, 예컨대, 1946년 미국의 송환 정책 강행 속에서 나타난 콜레라 사태 시 남한 주민, 만여 명의 죽음, ‘언어∙문화적 국민’ 범위의 획정 과정에서 ‘역사적 주민’(한국 화교, 재일 코리안)의 타자(‘외국인’)화, 나아가 그들에 대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배제∙차별, 특히 경계선 지역∙주민의 변경(邊境)・변경민(邊境⺠)화와 그것∙그들의 정치적 충성도에 대한 의심, 그리고 이어지는 문자 그대로 폭력 행사(‘4∙3’) 등의 과정이었다. 이와 같은 폭력이 내재한 역사적 변동, 즉, 차별적 식민제국의 국민국가 시대가 끝나고 공동 언어∙문화 집단의 에스닉 국민국가 시대가 시작된 역사적 획기가 1945년 8∙15이었다.
이와 함께, 전후 중화민국의 제도적 변화 또한 주목된다. 중화민국은 1928년에 ‘혈통주의’ 국적법을 제정해 자신의 국민을 규정하였지만, 삼민주의의 ‘훈정기’(訓政期) 규정에 따라 국민의 주권성을 부인하였다. 하지만 제2차 대전이 끝나고 1947년에 중화민국은 제헌(制憲)국민대회를 통해 국민 주권의 헌법을 제정하고, 다음 해 입법 의원 선거에서 선거권∙피선거권의 행사자, 즉 주권 소유∙행사의 주체로서의 국민을 확립하였다. 이로써, 동북아시아에는 일본인과 중국인, 또 한국인이라는 주요 에스닉을 주제적 단위로 하는 국민국가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종전 직후부터 전개된 미∙소 냉전은 ‘주요 에스닉을 주체로 하는 국민국가 체제의 완전한 실현’을 ‘저지’하였다. 한국인을 주체적 기반으로 하는 두 개의 국민국가, 즉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 동일한 중국인을 기반으로 한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제2차 대전의 승리자이자 전후 세계의 패자(霸者)인 미∙소의 전후 이념적 헤게모니(hegemony)와 권력적 패권(覇權) 경쟁인 냉전은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소위 ‘일(一) 민족 일 국가’의 ‘민족자결주의’ 원리의 온전한 실현을 ‘저지’하고 ‘지체’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냉전은, 뒤늦게 1971년에 야 이루어진 중∙일 국교 정상화의 사례에서처럼, ‘에스닉 국민국가 간의 체제’ 수립과 가동을 지체시켰다. (물론, 지역 내 국가 간 체제의 수립∙가동의 지체에는, 뒤늦은 1964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가 보여주듯이, 냉전의 효과와 함께 종전 이전의 제국/식민지 체제의 효과 또한 작동하였다.)
전후 동아시아의 체제 변동 과정은, 물론, 폭력적이었다. 즉, 그 과정은, 예컨대, 1946년 미국의 송환 정책 강행 속에서 나타난 콜레라 사태 시 남한 주민, 만여 명의 죽음, ‘언어∙문화적 국민’ 범위의 획정 과정에서 ‘역사적 주민’(한국 화교, 재일 코리안)의 타자(‘외국인’)화, 나아가 그들에 대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배제∙차별, 특히 경계선 지역∙주민의 변경(邊境)・변경민(邊境⺠)화와 그것∙그들의 정치적 충성도에 대한 의심, 그리고 이어지는 문자 그대로 폭력 행사(‘4∙3’) 등의 과정이었다. 이와 같은 폭력이 내재한 역사적 변동, 즉, 차별적 식민제국의 국민국가 시대가 끝나고 공동 언어∙문화 집단의 에스닉 국민국가 시대가 시작된 역사적 획기가 1945년 8∙15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대전 이후 동아시아
#식민 제국
#에스닉(ethnic)
#언어∙문화 중심의 공동체
#에스닉 국민주의
#에스닉 국민국가 체제
#송환
#콜레라 유행
#주체∙타자
#변경(English abstract)
#August 15th of 1945
#post-War East Asia
#colonial empire
#ethnic
#ethnic nationalism
#ethnic nation-state system
#repatriation
#cholera pandemic
#Self & Other
#national border
본문·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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