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소속 기관 / 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서울학연구 서울학연구 제102호
오류 신고하기

피인용 0

검색

    초록·키워드

    본 연구는 19세기 서울 남·동관왕묘에서 사용된 백자치성병의 제작 시기와 조형적 특성, 그리고 그 기물에 담긴 신앙적·의례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고찰하였다. 백자치성병은 단순한 의례용 병이 아니라, 19세기 관우 신앙의 변모와 관왕묘의 위상 변화, 그리고 고종 대의 정치·종교적 환경을 반영한 물질적 증거이다. 첫째, 제작 시기 분석 결과 기물에 새겨진 ‘庚辰’ 명문은 1820년이 아니라 1880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판단되며, 조형적 특징과 동시기 백자병과의 비교를 통해 1864년 이후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제작된 것으로 상정하였다. 둘째, 제작 기법 분석 결과 백자치성병은 고급 양각 기법 중 하나인 백니필화양각으로 명문을 새기고, 의례용 병의 형식을 채택함으로써 장식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구체적인 제작 정보와 사용처, 제작 시점을 기물에 직접 새긴 사례는 관왕묘 백자치성병이 유일하다. 셋째, 백자치성병은 고종 대 관우 신앙성격의 변화, 즉 충의(忠義)의 무신에서 질병 치유·재액 초복을 담당하는 치병신·기복신으로의 확장을 반영하고 있다. 1880년대 전후 전염병과 정치적 혼란 등 복합적 위기 상황 속에서 왕실은 관우의 영험함에 기대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기물에 새겨진 ‘치성(致誠)’은 민간 신앙의 ‘치성’ 행위를 왕실이 공적 의례속으로 끌어들인 종교 문화적 변용의 증거이다. 결론적으로 백자치성병은 조선후기 종교 문화의 복합성과 유동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로, 고종 대 관우 신앙의 성격 변화와 관념적 흐름을 담아낸 중요한 물질문화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UCI(KEPA) : I410-151-26-02-096313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