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약학
농수해양학
예술체육학
복합학
지원사업
학술연구/단체지원/교육 등 연구자 활동을 지속하도록 DBpia가 지원하고 있어요.
커뮤니티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와 전문성을 널리 알리고, 새로운 협력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네트워킹 공간이에요.
초록·키워드
임진전쟁 초기 전라도 관찰사 이광이 이끄는 조선군이 일본군이 맞붙어 패한 용인 전투는 조선이 당한 가장 수치스러운 패배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이광은 수만 명의 대군으로 천여 명의 적에 맞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 채 도망친 무능한 장수로 기억되었다. 전쟁사 서술에서 패전의 책임을 한 인물에게 모두 돌리는 구도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용인 전투에 앞서 이광의 조선군은 큰 어려움에 직면해있었다. 조선군은 군사 동원, 사기, 여론, 전술 등에서 모두 불리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광에 대한 평가는 ‘전장에서 도망친 장수’라는 악명만으로 가득했다. 조선에서 그에게 건 기대가 컸던 것을 의미하며, 전장에서의 도망이라는 행위에 대한 강한 경계가 주입된 결과이기도 했다. 이후 조선의 문인들은 이광의 행적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과장하였고, 그의 행위는 역사적인 실패와 수치로 상징화 되었다. 전투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전투 결과에 대한 당대의 평가, 그리고 후대의 전승은 구분해야 한다.
물론 전투 결과의 책임은 전투에 동원된 병력을 지휘한 최고지휘자에게 있다. 그러나 패배의 원인이 그에게만 있으며 그가 아니었다면 승리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적절하지 않다. 패배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기 전에, 이 전투가 승리할 수 있는 구조였는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술이 존재했는지 고민해야한다.
본문·목차
인공지능 문자 인식 모델을 통해 추출된 텍스트로, 일부 오타나 오류가 포함될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 개선 중입니다.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해당 부분을 드래그한 후 ' 를 통해 신고해주세요.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해당 부분을 드래그한 후 ' 를 통해 신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