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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한국교원대학교)
저널정보
춘원연구학회 춘원연구학보 춘원연구학보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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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논문은 佐翁 윤치호(1865-1945)가 60년 넘게 기록한 『윤치호 일기』(1883-1943)의 사료적 가치에 주목하여 그에 나타난 이광수의 면모를 추적해보았다. 연구의 출발점은 구체적으로, 춘원 이광수의 친일의 계기와 동기가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 있었다. 본 연구자는 『윤치호 일기』를 읽으며 춘원의 전향이 식민지의 탄압 정책에 기인함은 물론, 이 민족에게 저주와 같이 반복되어 온 지역감정과 파벌싸움, 그리고 이념 논쟁 등에서 발원한 민족운동 내부의 분열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그런 싸움과 공격에 휩싸일 때마다 실망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곤 하던 그가 왜, 어느 순간 ‘친일’로 자신의 입장을 ‘전향’하게 되었는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는 대목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수양)동우회 사건’ 전후의 상황을 자세히 검토함으로써 그 단서를 찾고자 했다.
    연구 결과, 춘원 이광수가 친일로 전향한 것은 이미 알려진 바대로, 일제의 강압을 그 첫 번째 요인으로 꼽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흥업구락부 사건’(1938.5.) 관계자들을 구해내기 위해 윤치호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광수 또한 ‘수양동우회 사건’(1937.6.)으로 구속된 동지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광수의 경우에는 윤치호와 달리 자기 자신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 재판 또한 5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말과 글, 그리고 행동을 통해 계속하여 자신의 친일로의 전향을 증명해야만 했던 상황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고 보았다.
    두 번째로 그의 친일이 적극적이었던 이유에 대해 본고에서는 이러한 외적 요인 말고도 내적인 요인 또한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수필 「육장기」(1939.9)에 나타난 그의 고백에 주목해 보았다. 즉, 지금까지의 실력양성을 통한 민족 개조로는 안 되고 이제는 ‘혼’을 개조하는 신앙의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러한 각성은 식민 통치자들의 억압에 의해 촉발된 것이자 춘원 스스로 자신이 겪고 있었던 절망스런 상황 속에서 이르게 된 결론이기도 했다. 즉, 그는 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파쟁만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의 ‘독립’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의 준비론은 ‘실력양성’을 넘어서, 민족성과 인간성 자체를 개조하는 종교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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