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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차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음료로서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과 일본 등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차를 마셨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본 논문은 중국차문화사에서 각 시대별 음다변화에 따라 다구가 어떻게 변화 발전되었는가를 연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제다법이나 차의 종류가 달라졌고, 그에 따른 음다법과 다구의 변화가 수반되었다.
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서한시대 왕포(王褒)의『동약(?約)』이다.『동약』은 차문화의 발상지로 볼 수 있는 무양(武陽, 지금의 사천성)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원지방에 차가 알려진 것은 청나라 고염무(顧炎武, 1613~1682)의 기록에 의하면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로 보고 있다. 진한시대 이후 차문화는 점차 풍성해지면서 발전했다. 삼국시대 위나라 장읍은『광아(廣雅)』에서 최초의 병차 제다법과 음다법을 언급하고 있다. 당대에 이르면 차의 생산이 증가하면서 변방지역에까지 차가 보급되고, 낙양과 장안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집집마다 차를 마실 정도였다. 특히 육우(陸羽, 733~804)는『다경(茶經)』을 저술하여 차를 물질적인 음료에서 정행검덕(精行儉德)의 품성을 기르는 정신적 음료로서 격상시켰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차가 중국 전역에 보급되고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로 마시게 된 것은 송대이다. 개문칠건사(開門七件事)에 차가 들어가고, 밥 없이는 살아도 차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중국인에게 있어서 차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명대에는 태조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이 1391년에 단차폐지령(團茶廢止令)을 내림으로 해서 이전까지 만들어왔던 병?단차에서 산차로 바뀌는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러므로 제다법에서는 증청에서 초청으로의 변화가 있었고, 녹차에서 발효차가 생겨나 차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청대에는 제다법이 더욱 발전되어 오늘날의 6대 다류가 완성되었고, 산차를 우려 마시는 다도구는 예술작품으로까지 발전되었다.
중국의 시대별 음다법은 당대의 자차법에서 송대의 점차법으로 명대의 포차법으로 이어져 왔다 음다문화가 발전하면서 다구도 점점 세분화되고 정교해졌다. 당대의 자차법에서는 솥에다 물도 끓이고 차도 끓였으므로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는 솥과 찻잔이었다. 당대에는 실외에서 솥에서 물을 끓이고 차도 끓여서 비교적 큰 찻잔에 마셨으며 보관방법이 부족했던 당시에 산화된 차의 색을 보완하기 위해 월주 청자를 선호하였다.
송대의 점차법에서는 실외에서 탕병에 끓인 물을 실내로 가져와 찻잔에 담긴 차에 조금씩 부어가면서 격불하여 마셨다. 격불할 때 사용하였던 도구는 초기에는 차시(茶匙)를 사용하였으나 풍성한 거품을 얻기 위해 점차 대나무를 가늘게 쪼갠 차선(茶?)을 이용하였다. 차를 겨루던 투차(鬪茶)에서는 ‘차색귀백(茶色貴白)’이라 하여 흰색의 차거품을 선호하였으며, 흰색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건안지방에서는 흑유(黑釉) 찻잔을 선호하였다. 그러나 명대의 포차법은 당?송대와는 다른 산차(散茶)를 우려 마셨기 때문에 차를 굽고 곱게 가는 다구가 필요 없어지면서 차를 우리는 주전자 형태의 다호(茶壺)가 생겨났고, 자사호가 탄생하였다. 여러 번 우려 마셔야 했기 때문에 찻잔의 크기는 작아졌다. 또한 다양한 발효차가 생겨나면서 발효도에 따른 탕색도 다양해졌다. 그러므로 우린 차탕의 색깔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백자나 분청이 유행하게 되었다.
물론 각 시대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와 사상도 차문화에 영향을 주었지만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제다법과 음다법의 발전이었다. 제다법의 변화에 따라 음다법이 바뀌었으며 다구도 변화하여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다구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서한시대 왕포(王褒)의『동약(?約)』이다.『동약』은 차문화의 발상지로 볼 수 있는 무양(武陽, 지금의 사천성)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원지방에 차가 알려진 것은 청나라 고염무(顧炎武, 1613~1682)의 기록에 의하면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로 보고 있다. 진한시대 이후 차문화는 점차 풍성해지면서 발전했다. 삼국시대 위나라 장읍은『광아(廣雅)』에서 최초의 병차 제다법과 음다법을 언급하고 있다. 당대에 이르면 차의 생산이 증가하면서 변방지역에까지 차가 보급되고, 낙양과 장안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집집마다 차를 마실 정도였다. 특히 육우(陸羽, 733~804)는『다경(茶經)』을 저술하여 차를 물질적인 음료에서 정행검덕(精行儉德)의 품성을 기르는 정신적 음료로서 격상시켰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차가 중국 전역에 보급되고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로 마시게 된 것은 송대이다. 개문칠건사(開門七件事)에 차가 들어가고, 밥 없이는 살아도 차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중국인에게 있어서 차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명대에는 태조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이 1391년에 단차폐지령(團茶廢止令)을 내림으로 해서 이전까지 만들어왔던 병?단차에서 산차로 바뀌는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러므로 제다법에서는 증청에서 초청으로의 변화가 있었고, 녹차에서 발효차가 생겨나 차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청대에는 제다법이 더욱 발전되어 오늘날의 6대 다류가 완성되었고, 산차를 우려 마시는 다도구는 예술작품으로까지 발전되었다.
중국의 시대별 음다법은 당대의 자차법에서 송대의 점차법으로 명대의 포차법으로 이어져 왔다 음다문화가 발전하면서 다구도 점점 세분화되고 정교해졌다. 당대의 자차법에서는 솥에다 물도 끓이고 차도 끓였으므로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는 솥과 찻잔이었다. 당대에는 실외에서 솥에서 물을 끓이고 차도 끓여서 비교적 큰 찻잔에 마셨으며 보관방법이 부족했던 당시에 산화된 차의 색을 보완하기 위해 월주 청자를 선호하였다.
송대의 점차법에서는 실외에서 탕병에 끓인 물을 실내로 가져와 찻잔에 담긴 차에 조금씩 부어가면서 격불하여 마셨다. 격불할 때 사용하였던 도구는 초기에는 차시(茶匙)를 사용하였으나 풍성한 거품을 얻기 위해 점차 대나무를 가늘게 쪼갠 차선(茶?)을 이용하였다. 차를 겨루던 투차(鬪茶)에서는 ‘차색귀백(茶色貴白)’이라 하여 흰색의 차거품을 선호하였으며, 흰색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건안지방에서는 흑유(黑釉) 찻잔을 선호하였다. 그러나 명대의 포차법은 당?송대와는 다른 산차(散茶)를 우려 마셨기 때문에 차를 굽고 곱게 가는 다구가 필요 없어지면서 차를 우리는 주전자 형태의 다호(茶壺)가 생겨났고, 자사호가 탄생하였다. 여러 번 우려 마셔야 했기 때문에 찻잔의 크기는 작아졌다. 또한 다양한 발효차가 생겨나면서 발효도에 따른 탕색도 다양해졌다. 그러므로 우린 차탕의 색깔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백자나 분청이 유행하게 되었다.
물론 각 시대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와 사상도 차문화에 영향을 주었지만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제다법과 음다법의 발전이었다. 제다법의 변화에 따라 음다법이 바뀌었으며 다구도 변화하여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다구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목차
- Ⅰ. 서론 11. 연구의 목적 12. 연구의 방법 3Ⅱ. 중국 차문화 변천사 51. 중국 차문화의 기원과 당 이전의 차문화 52. 당대 차문화의 형성 93. 송대 차문화의 번영 154. 명청대 제다법의 혁신과 차문화의 확대 23Ⅲ. 중국 시대별 음다법의 특징 291. 당대의 자차법 302. 송대의 점차법 353. 명청대의 포차법 40Ⅳ. 음다법의 변화에 따른 다구 441. 당대의 자차법 다구 452. 송대의 점차법 다구 523. 명청대의 포차법 다구 574. 음다법의 변화에 따른 다구의 상이점 62Ⅴ. 결론 83참고문헌 87ABSTRACT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