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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원광대학교,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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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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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소치 허련은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 시, 서, 화 모두 능했다. 그는 헌종의 애호를 받았고, 조선말기의 대학자이며 당대 최고의 서화가이자 감식안이인 추사 김정희에게서 “압록강 동쪽에서는 이만한 그림이 없다”는 등의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소치 허련은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 실질적 중인 신분이었던 그가 살았던 조선시대 후기의 시대상을 감안해서 봐도 소치 허련은 당대의 최고의 화가이자 문인화가이다.
    소치 허련이 살았던 19세기 조선왕조 말기는 정치적?사회적인 대혼란의 시기이며 근대로 변화하는 격동의 과도기였다. 그 전시기인 18세기에는 정치?사회 뿐 아니라 문화예술에도 신기운이 고양되고 융성하던 때로 조선의 문예부흥기였다. 이러한 18세기에 문화적?사상적을 토대로 등장한 실학은 실생활의 실용과 실증을 제기하였으며, 그 정신에 주체적 인식이 발현하였다. 그리하여 학문과 문화 전반에 새로운 실학이념이 만나 우리 문학과 예술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켜 주체적 의식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런 18세기와는 대조적으로 19세기는 전통시대와 근대를 잇는 와중에 복잡하고 다난하였고,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도 다시 중화사대로 회귀하여 이전 시기에 이룬 회화가 퇴조하였다.
    소치 허련은 당대의 기존 양식과는 다른 존재 양식을 가진 직업적 화가이다. 이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바탕이 되어 있다. 17세기 이래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중인 계층의 성장은 신분이 고착되어 청요직으로 상승하는 돌파구가 봉쇄되자 신분 상승을 도모하였다. 이러한 성장한 중인?서얼층은 부를 축적하고 향락 풍조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고 종래 왕실과 양반 사대부층이 주도했던 서화 수집에 열성적으로 나서 소치 허련과 같은 직업적 화가들이 활동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소치 허련이 작품활동을 하며 사군자 그림과 묵모란을 많이 남겼는데, 이것은 당시 주요 수요층이었던 중인?서얼층이 원하는 그림이 복잡한 구성과 심오한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한 그림보다는 그들의 상층문화 지향적 속성을 나타내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단순히 작품 자체가 아니라 그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작가의 생애에 관한 이해도에 따라 작가가 그린 작품에 대한 이해와 작품의 감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소치 허련은 평생의 스승인 추사 김정희의 영향과 평생 교유했던 사대부들과 여항문인들의 영향으로 사대부적 지향적 취향으로 남종화에 몰입하고 심취하였다. 소치 허련이 살았던 조선시대 말기는 여항문인들의 문학적 의식세계가 사대부층에게 지배되었던 이전 시대 가치관이나 문화적 기류가 해체되거나 극복된 것이 아니고 기존의식과 질서를 답습하는 한계성을 가졌다. 소치 허련의 남종화에 대한 경도도 이러한 시대적 시류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소치 허련의 회화세계에서 그만의 독특한 개성과 필치 및 새로운 시도를 보이기는 하지만 당대 다른 여향문인화가들과 같은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치 허련은 특히 산수화에 능했으며, 그의 산수화는 황공망과 예찬의 양식과 형식의 남종산수화와 담채풍의 신문인화풍을 바탕으로 갈라진 붓끝을 사용한 거칠고 자유분방한 필치와 화풍이 독특하고 개성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진한 먹으로 담대하고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사군자와 모란, 괴석, 노송, 연화 등의 그림도 소치 허련 특유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소치 허련은 우리나라 화단에 전통 남종산수화를 정착시켰고, 남종산수화의 양식이나 기법 뿐만 아니라 남종산수화의 이론과 사상적 배경까지도 깊은 조예를 가진 문인화가로 현대 한국화단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호남 진도에 있는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이 말년에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살며 그림을 그렸던 곳으로 현재 진도의 주요 문화관광지이다.
    소치 허련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근대 남종화단은 소치 허련의 가계를 중심으로 계승되어 호남지방을 중심으로 발전되었고, 허백련과 허건에 의해 한국전통 남종문인화와 현대적 감각의 남종문인화가 계승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한국화단의 큰 뿌리 중 하나로서 그 맥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예술문화는 전반적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중앙집중화 현상을 보이며, 지방 예술문화는 낙후되어 있는데, 소치 허련으로부터 이어지는 운림산방으로 대표되는 호남화단의 지방 독자적인 예술문화는 예외적으로 서울 중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지방 예술문화를 독자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중앙화단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소치 허련으로 시작되어 이어지는 것으로 소치 허련은 우리나라 지방 화단의 영향을 잘 알 수 있다. 소치 허련에 대한 여러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만 그가 가진 영향력에 비해 다소 미진한 경향이 있다. 앞으로 소치 허련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성화 되길 기대하며 본 논고를 마친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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