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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일반적으로 자연법은 고대부터 중세, 근대로 이어져 오는 서양 정치사상의 중심 개념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중세 자연법은 자연법의 관념에다 신의 존재를 전제로 한 의무의 개념을 추가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중세의 자연법 사상의 완성자로 인정되어온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체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퀴나스의 사상 속에 내재하고 있는 기독교化한 스토아의 자연법적 사유구조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사이의 긴장을 발견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아퀴나스의 윤리학 체계가 기존의 해석들이 제기하는 것처럼 스콜라 자연법의 언식에 충실하지 않다는 것이 논의된다. 아퀴나스의 이론은 오히려 중세의 자연법적 사유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사유에 더욱 가깝다는 사실이 이 글의 중심주제이다.
이러한 주제를 논함에 있어 아퀴나스의 사상 속에 내재해 있는 사려(Prudence)의 덕 중심의 논리를 설명하고 그것과 자연법과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시도된다. 비록 자연법이 신에 의해 인간에게 심어져 있으며 인정법의 상위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선을 행하라는 의미, 즉 덕에 기우는 방향의 행동을 하라는 지극히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규정일 뿐이다. 아퀴나스가 말하듯이 덕은 오직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인정법은 스스로 덕을 쌓는 훈련을 멀리하는 많은 사람들을 형벌의 위협을 통해 덕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 결국 인정법의 중요한 한 기능은 인정법을 준수하는 우리의 생활을 통해 우리를 훈련시킨다는 데 있다. 인간은 덕성을 향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덕성의 완성은 훈련을 동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현실의 생활에는 인간의 훈련과 절제를 어렵게 하는 많은 쾌락의 유혹이 있음을 감안할 때 이러한 훈련은 결코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정법은 모든 덕행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에 수렴되는 덕행만을 규정한다. 인정법이 비록 자연법의 일반적 규정인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라는 의미에서의 상위법에 종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실질적 기준은 사려의 덕에 의해 형성된다. 특히 공동체의 덕행을 유지하기 위해 법률을 만들어야 하는 입법자의 경우 노력을 통한 사려의 발전이야말로 필수적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퀴나스의 도덕이론은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의 중세적 변용이다. 크리스천으로서 현세의 덕은 신과의 진정한 만남으로 가능한 진정한 행복, 궁극적 선에 비해 이차적이고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나 창조의 원칙으로서 신 자신의 원리로서의 영원법은, 자연법의 보편적ㆍ추상적 원리로서만 인간에게 나타나 있다. 영원법이 제기하는 신의 창조의 원리와 타락한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과의 간격은 자연히 인간의 현세에서의 덕행의 의미를 제한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세에서의 인간의 덕행의 추구 역시 개개인의 품성과 노력에 의해 발전하는 덕성에 기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윤리학과 기독교화한 스토아적 자연법은 아퀴나스에 있어 여전히 불완전한 결합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를 논함에 있어 아퀴나스의 사상 속에 내재해 있는 사려(Prudence)의 덕 중심의 논리를 설명하고 그것과 자연법과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시도된다. 비록 자연법이 신에 의해 인간에게 심어져 있으며 인정법의 상위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선을 행하라는 의미, 즉 덕에 기우는 방향의 행동을 하라는 지극히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규정일 뿐이다. 아퀴나스가 말하듯이 덕은 오직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인정법은 스스로 덕을 쌓는 훈련을 멀리하는 많은 사람들을 형벌의 위협을 통해 덕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 결국 인정법의 중요한 한 기능은 인정법을 준수하는 우리의 생활을 통해 우리를 훈련시킨다는 데 있다. 인간은 덕성을 향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덕성의 완성은 훈련을 동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현실의 생활에는 인간의 훈련과 절제를 어렵게 하는 많은 쾌락의 유혹이 있음을 감안할 때 이러한 훈련은 결코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정법은 모든 덕행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에 수렴되는 덕행만을 규정한다. 인정법이 비록 자연법의 일반적 규정인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라는 의미에서의 상위법에 종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실질적 기준은 사려의 덕에 의해 형성된다. 특히 공동체의 덕행을 유지하기 위해 법률을 만들어야 하는 입법자의 경우 노력을 통한 사려의 발전이야말로 필수적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퀴나스의 도덕이론은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의 중세적 변용이다. 크리스천으로서 현세의 덕은 신과의 진정한 만남으로 가능한 진정한 행복, 궁극적 선에 비해 이차적이고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나 창조의 원칙으로서 신 자신의 원리로서의 영원법은, 자연법의 보편적ㆍ추상적 원리로서만 인간에게 나타나 있다. 영원법이 제기하는 신의 창조의 원리와 타락한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과의 간격은 자연히 인간의 현세에서의 덕행의 의미를 제한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세에서의 인간의 덕행의 추구 역시 개개인의 품성과 노력에 의해 발전하는 덕성에 기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윤리학과 기독교화한 스토아적 자연법은 아퀴나스에 있어 여전히 불완전한 결합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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