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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승수 (한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민족문화 제52집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409 - 448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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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행로 중, 通州에서 북경의 숙소인 玉河館에 이르는 노정을 재구하고, 이 길에 남아있는 역사 사연과 사신들의 마음 자취를 살펴본 결과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압록강을 건넌 사신들은 대략 한 달 정도의 여정을 거쳐 북경에 도착했다. 도착 전 마지막 날에는 통주에서 묵을 때가 많았다. 통주에서 옥하관까지의 거리는 약 25km이다. 새벽에 통주를 떠난 사행은 오후에 숙소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 사신들은 八里橋를 건너며 내운하인 通惠河를 관찰했고, 東嶽廟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이국의 종교문화를 체험했다. 북경은 戰國時代 燕나라의 도읍지로, 천하의 인재를 모아 국력을 일으킨 昭王과 黃金臺 고사가 유명했다. 조선의 연행사들은 북경에서 황금대의 위치를 탐문하였으며 때론 찾아 나서기도 했지만, 여러 견해가 구구할 뿐 그 장소를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동악묘에 미치기 직전 金臺夕照站 근처에는 1751년 乾隆帝가 세운 金臺夕照碑가 서있다. 연행로에서 겨우 500 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이 비석을 언급한 기록이 없다는 것은 의아스러운 일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으로 남겨두었다. 朝陽門을 통해 북경성에 진입했는데, 이 문은 북경성 진입과 고향 회귀의 감회가 표출되는 곳이었다. 북경성안에 들어가서는 東四牌樓와 東單牌樓를 지나, 東江米巷을 따라 中玉河橋를 건넜다. 중옥하교를 건너자마자 길 북쪽에 옥하관이 있었는데, 오늘날의 最高人民法院 자리가 옥하관 터로 추정된다. 옥하관에 여장을 풀면서 북경에서의 공식 외교 일정이 시작되었다.

목차

1. 머리말
2. 八里橋에서 通惠河의 水運을 살피다
3. 마음속 깊이 새겨진 장소, 黃金臺와 金臺夕照
4. 조복을 착용하고 이국문화를 체험하다, 東嶽廟
5. 북경 입성과 귀국 제일보를 딛다, 朝陽門
6. 牌樓 길 지나 玉河橋를 건너다
7.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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