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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권돈인의 안동권문은 호서사림(湖西士林)의 종장(宗匠)이자 노론의 영수로 추앙된 학덕있는 산림 권상하(權尙夏)를 배출한 명문(名門)이다. 서인의 당색으로 출발한 안동권문은 정치적으로 노론의 신임의리(辛壬義理)를 중시하고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한 정통 노론의 입장을 견지하였고, 학문적으로 호론(湖論)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권돈인의 증조부인 권진응(權震應)대에 오면 호론에서 낙론(洛論)으로 전향한 가운데, 권돈인도 김정희 조인영 등과 교유하며 호론에 머물지 않고, 당시 풍미하던 청조 학술인 고증학금석학에도 관심을 가지며 비교적 개방적인 학문관을 지니게 된다.이러한 가문적 배경에서 성장한 권돈인은 1842년(헌종 8) 이후 1851년(철종 2)까지 약 8년 동안 재상으로 있으면서, 친정을 단행한 헌종이 순조와 효명세자(孝明世子)의 유지(遺志)를 이어 반외척세력을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과단성있는 정치를 단행하고자 했을 때, 헌종을 가장 핵심에서 보필하였던 실무관료였다. 사림정치(士林政治)를 이상적인 정치형태로 인식하였던 권돈인은 정국운영 과정에서 군주의 일방적인 전제권은 견제하였다. 권돈인은 1851년(철종 2)의 진종조천예송(眞宗遷禮訟)에서도 왕실례(王室禮)와 사서례(士庶禮)를 동일하게 예우하고자 하였던 사림정치론의 입장에서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왕실례를 사서례와 구분하여 왕실을 한 차원 높여서 예우하는 왕권강화론을 주장한 안동김씨 세도정권과의 예송 논쟁에서 패함으로써 권돈인을 비롯한 반외척세력은 정치적으로 몰락하였다. 현실정치에서는 반외척세력이 정치권으로부터 몰락했으나, 이들은 김정희를 중심으로 하나의 학맥을 이루며 당대의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을 구상하였고, 이는 김정희의 문인인 대원군의 집권을 통하여 고종대 의 개혁정치에서 다시 한 번 시도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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