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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Aoyama Gakuyin University)
저널정보
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역사 사회와역사 제115호
발행연도
수록면
7 - 43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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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메이지 정부는 서구 열강, 청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 큐슈나가사키에 체류했던 서양인과 청국인 남성들에게 상하이행 여권을 발급하면서 유녀의 동반을 인정했다. 이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일본 성매매업의 해외 진출이시작되었다. 일본 외무성은 상하이 거류민의 정착을 위해 성매매업자의 존재를 교묘하게 활용했고, 러일전쟁 후에는 일본 해군부대를 위해 일본 국내의 공창제 제도를 준용했다. 1920년대 후반에는 난징 국민정부의 공창제 폐지 요청에 대응해 성매매 제도를 재편했지만, 군과 거류민의 사정을 감안해 완전히 폐지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허술하게나마 유지되던 성매매 단속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은 1930년대의제1차, 2차 상하이 사변이었다. 일본 군대의 상하이 점령 때 차례로 개설된 해군위안소, 육군위안소를 중심으로 한 성매매 관련 유흥업이 사변 이후 절정을 이루었고, 초기의 위안소도 고급 룸살롱으로 탈바꿈했다. 이렇듯, 민간업자나 성매매 여성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자의로 진출한 것처럼 논의되지만, 상하이의 성매매는 초기부터 국가권력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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