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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동아시아고대학 제30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93 - 229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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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10월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가 연출한 일본어연극 <춘향전>이 현해탄을 건너 식민지 조선에 나타났다. 이렇게 일본어로 다시 태어난 <춘향전>은 식민지 조선의 문화계에 일종의 ‘붐’과 같은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춘향전>에 쏠린 관심과는 대조적으로 공연 자체에 대한 식민지 지식인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인색했다. 무엇보다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일본어와 일본인 배우에 의해 재현된 <춘향전>이 기존의 <춘향전>이 담고 있었던 ‘조선적인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고 한 목소리로 불만을 표출했다. 이러한 불만에는 무라야마가 야심차게 시도한 가부키적 연출법도 한 몫을 했다. 즉, 가부키의 도입이 <춘향전>을 조선적 전통에서 이탈시켰다고 보았다. 그리고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춘향전>의 경성 공연 직후 열린 좌담회에서는 조선의 문화를 일본어로 표현가능한가를 둘러싸고 일본인 문학자와 조선 측 참석자 간의 날선 대립이 벌어졌다. 일본어연극 <춘향전>은 이렇게 전례 없는 관심과 더불어, 일본인 제작자와 조선인 수용자, 그리고 수용자로서의 일본의 문학자와 식민지 문학자 사이의 메우기 힘든 균열을 드러냈다. 이처럼 <춘향전>을 둘러싼 갈등=균열은 <식민제국=일본>과 <식민지=조선>이라는 경계선을 따라 표출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문화제국주의와 문화민족주의 사이에 일어난 ‘침략’과 ‘저항’의 구도로 이해하는 것은 성급하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 일본 측 지식인들은 식민지 조선 민족문화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문화적 저항의 태도를 고수하면서도 일부 식민지의 지식인은 중국에서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식민지 문화의 표상공간에서 제국의 언어인 일본어의 독점적 지위를 주장했던 일본인 측의 논리는 현실적으로 문화제국주의처럼 기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족어로 표현할 권리를 박탈당한 민족문화는 자율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어연극 <춘향전>에서 비롯되어 1940년 전후에 정점에 달한 제국일본의 ‘조선 붐’은 식민제국에 의한 식민지 문화의 ‘재발견’이기보다는 식민지 민족문화의 소멸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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