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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서울에서 광장으로 대표되는 도시 공공공간은 어떻게 형성되고 활용되었는가? 광장을 ‘소통형’과 ‘과시형’으로 대별하여 유형화해본다면, 제국주의시대 식민지도시의 광장공간은 대체로 후자의 특성을 강하게 띤다. 광장공간에 대한 연구는 형태학적 분석과 화용론적 분석의 양 측면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식민지 시기 서울의 광장공간은 일제 말기 전시 총동원체제기를 제외하면 대체로 사회문화적 차원에서의 화용론적 성격은 매우 미약하게 나타난다. 일제하 서울 도심부의 대표적인 광장공간으로는 조선은행앞 광장과 경성부청앞 광장을 들 수 있는데, 양자의 형성사적 배경이나 장소성은 다소 차이가 있다. 조선은행앞 광장은 1910년대 형성된 대표적 광장으로, 당시 식민권력이 한편으로는 종로·덕수궁앞·광화문거리 등 북촌지역에 남겨진 왕조시대 광장정치의 장소성을 파괴·말소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촌의 신시가지 개발에 주력했음을 보여준다. 1920년대 중반에는 식민지 행정수도의 상징경관이 일차적으로 완성되는데, 경성부청앞 광장과 조선은행앞 광장 및 주변 도심부 지역의 장소성의 기능적 분화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는 것은 이때부터이다. 이들 광장은 형태학적 완성도가 비교적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화용론적으로는 거의 의미있는 활용 양상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경성부청앞 광장의 경우 1930년대 중반경부터 주민동원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간헐적으로 사용된다. 공간의 화용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활성화된 광장은 1930년대 이후의 신궁광장이다. 남산의 신궁광장과 그 주변 공간은 특히 전시 총동원체제기 황국신민화를 위한 상징적 장소로 자리매김하면서 주민들의 집단적 강제동원을 통해 이루어진 군국주의적 국가의례의 주된 무대로 사용되었다. 결국 일제하 서울의 광장과 공공공간은 전반적으로 소통성이 거의 부재한 압도적인 과시성으로 특징지어지는 공간으로서, 그 역사적 유산은 탈식민 서울의 도심부 공간구조와 시민 일상생활에 지속적으로 강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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