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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국립대구박물관)
저널정보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한국고고학보 제5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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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용(龍)은 중국의 신석기시대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다양한 유물에 표현되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용문양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형태적 특징 외에도 돼지코와 입주위가 세 갈래로 나누어지면서 입을 벌리고 있다. 그리고 입 속에서는 혀 또는 운기로 상징되는 돌기가 나온다. 이것은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 용을 형상화시키는 표준방법이었다. 기원전 2세기이후 용토템족이었던 한나라의 사군(특히 낙랑)이 한반도에 설치된 뒤에 우리나라에는 처음으로 용문양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지역적으로나 유물면에서 제한된 곳에만 확인되었고 삼국시대 이전에는 한반도 전체에 걸쳐 확산되지는 못하였다. 그 후 고구려 고분벽화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된 남부지역으로의 용문양 확산은 광개토대왕의 남정(400년)이 가장 큰 계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받아들인 다양한 용문양은 주로 고위층 또는 왕릉급의 무덤의 주문양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금․은을 이용한 금속 공예품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한편 최근 귀면문으로 불리던 유물이 용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용의 정면모습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귀면 중에는 개구리(월상), 까마귀(일상), 연꽃 등과의 공반관계를 고려한다면 용으로 보는 것이 합당한 것이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삼국시대 지배계층의 대표적 문양으로 사용된 용문양은 봉황과 함께 도교사상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신라가 통일되면서 봉황문은 불교사상에 융화되지 못한 채 용문에 밀려 도교사상과 함께 퇴보하고, 반대로 용문은 불교유물의 대표적 문양으로 자리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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