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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지금까지 신라의 『國史』의 찬수를 보는 통설적 시각은 6세기 신라의 국가적 성장을 토대로 한 진흥왕대의 왕권 강화와 유교 이념의 강화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幼年의 군주 치하에서 이루어지는 『국사』 찬수가 왕권 강화와는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적 연결고리를 통해 가능해지는지가 분명하지 않으며 또한 『국사』의 찬수를 유교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에서 재검토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본고에서 필자가 생각한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거칠부의 관등의 변화를 추적하여 『국사』 찬수 기간을 추정해 보면 대략 5년 미만이었을 가능성이 도출되며 이는 비교적 단기간에 이루어진 작업이었음을 보여준다. 둘째 ‘왕권’의 개념을 협의의 군주개인의 권력과 신라의 지배공동체를 표상하는 대표권력이란 광의의 개념을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에서 『국사』의 성격 또한 그런 관점에서 보아야 함을 언급하였다. 셋째 이사부, 거칠부 등의 찬수 주도세력 및 진흥왕의 권력(왕권) 강화에 보다 직접적인 효력을 발휘하였을 소재로서 신라의 불교 수용사에 대한 기술 문제를 언급하였다. 불교의 수용 문제는 법흥왕대까지 이어진 대표적 君臣 갈등의 사례였으며 그 정치적・사상적 연장선상에 유년의 군주 진흥왕의 시대가 위치하고 있었다. 불교 문제의 기술은 과거 수용 반대파들에 대한 견제의 의미와 함께 유・불 습합의 현실의 정치를 주도해갈 수 있는 명분을 강화해 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사부의 〈君臣善惡・褒貶〉론은 그저 명분론적인 수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넷째 당시 신라의 지적 풍토는 주지하듯이 이미 유・불의 습합적 상황이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국사』의 찬수도 유교만이 아니라 불교와의 연관 속에서 재음미해 볼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예컨대 진흥왕의 연호인 ‘開國’과 건국기년인 갑자년에 대한 관심도 불교적인 맥락과 연관지어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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