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소속 기관 / 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독일 튀빙겐대)
저널정보
도시사학회 도시연구 도시연구 : 역사·사회·문화 제21호
오류 신고하기

피인용 0

검색

    초록·키워드

    이 연구는 1930-40년대 만주지역, 특히 한국인들이 거주민 다수를 이루고 있었던 간도지역에 대한 서구인들의 인식을 다룬다. 만주지역은 오늘날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에 해당하는 곳인데, 청대말까지 왕조의 발상지로 알려졌기에 청당국은 사람들이 이주하는 것을 금했고, 만주족과 몽골족 등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1930년대 이후 가 되어서야 근대 영토와 국경개념을 통해 경계가 확정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인들의 만주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연구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1920년대 이후 이 지역을 답사했던 서구인들 중 학문적으로 정책적으로 가장 영향력있다고 판단한 사람들 중, 미국인 오웬 라티모어(Owen Lattimore), 영국인 죤스(Francis C. Jones), 그리고 선교사들의 만주에 대한 인식을 다룸으로써, 이 지역의 중국 본토와 구별되는 특성과 지리적 문제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다. 이들은 만주지역이 다양한 종족들(ethnic group)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서, 중국 본토와는 다른 자연환경적 특성에 주목했고, 특히 간도 지역의 전통적인 한국인들의 거주지로서의 특성을 공히 인식했다. 특히 라티모어는 이들 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현지조사와 문헌조사를 통해서 중국사의 변화를 이 지역과 중국 본토의 역사적 접촉을 통해 이해하고자 했다. 또한 죤스는 이 지역을 답사하고 영국에 돌아가 전후 만주에 대한 학문적 업적을 생산했다. 선교사들은 일본식민당국의 만주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만주지역의 독자성을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들은 해방 후 미국이나 영국의 정책제안자들에 의해서 이 지역이 중국 본토와는 구별되는 지역으로서 “신탁통치”의 대상으로 제안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1949)의 수립을 통해서 이 지역의 근대적, 배타적 영토주권이 확립되게 되면서 만주에 대한 다양한 기억은 묻혀졌다.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