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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인문학회 동아인문학 동아인문학 제2집
발행연도
2002.12
수록면
69 - 76 (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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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家思想의 核心인 「仁」은 세 가지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格物」ㆍ「致知」ㆍ「誠意」ㆍ「正心」ㆍ「修身」 等 다섯 가지의 修己過程을 거쳐 「仁」ㆍ「義」ㆍ「禮」ㆍ「智」 等의 明德을 회복하는 거이며, 둘째는 명덕을 회복한 사람이 「齊家」ㆍ「治國」ㆍ「平天下」 等 세 단계의 治人過程을 통해 「親民」의 道理를 실천하는 것이며, 셋째는 위의 두 단계를 거쳐 「止於至善」 즉 「仁」의 境界에 도달하는 것이다.
近世朝鮮의 義兵將 忘憂堂 郭再祐先生(1552-1619)은 바로 「明德」과 「親民」으로 생활철학을 삼았던 유가의 문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는 儒家思想에 입각하여 壬辰倭亂을 극복하는데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가 임진왜란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유가사상을 실천했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官軍이 棄城逃走하여 國家가 危急存亡之境에 처했을 때 平民身分으로서 起義抗戰하여 배달겨레의 正氣를 부지하였다.
2. 戰亂中에 繼母喪을 당함에 江原道 蔚珍縣으로 옮겨 3年喪을 치르는 동안 여러 번 宣祖의 起復命令이 있었으나 孝로써 忠의 근본을 삼는 유가의 大義名分을 고수하였다.
3. 朝鮮이 壬辰倭亂으로 인해 입은 재앙은 극심하였다. 그러나 곽재우는 침략한 일본장군 풍신수길을 탓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조선정부가 일본으로 하여금 쳐들어올 빌미를 제공한 문제를 비판함으로써 反求諸己의 主體思想을 실천하였다.
4. 임진왜란 당시 參戰將軍들은 戰爭 뒤의 논공행상을 위해 적군의 머리를 베어 그 숫자로써 전과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곽재우는 不忍之心을 발휘하여 절대로 죽은 적군의 머리를 베는 것을 엄금함으로써 仁人의 心性을 보여주었다.
5. 壬辰倭亂이 종료된 뒤 朝鮮政府가 郭再佑에게 상당한 고관직을 임명했지만 그는 어떠한 관직도 받아드리지 아니하고 고향으로 돌아 隱居自重함으써 진정한 功遂身退의 辭讓之心을 실현하였다.

목차

一. 諸言
二. 自擔「修己人」的責任以抗戰
三. 體得「先後本未」之論以實現「以孝爲忠之本」
四. 根據「反求諸己」之主體思想以不怨日本之侵略
五. 堅持「不忍見之心」而禁斬賊屍之頭
六. 功遂身退以明哲保身
七. 結言
韓國語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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