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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보 한국정치학회보 제33집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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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논문의 목적은 위화도회군(1388년/禑王 14)의 정치적 의미를 살펴보는 데 있다 기존연구는 이 사건을 주로 (1) 친원파와 친명파의 사대주의적 대립 (2) 이성계파의 집권욕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했다. 본 연구는 이 사건을 (l) 국가안보와 (2) 고려의 내정개혁에 대한 의견대립으로 야기된 불가피한 정치적 분열로 보고자 한다.
    고려말 동북아 정세의 현저한 특징은 원ㆍ명의 교체와 새로운 질서 수립을 위한 전쟁이었다. 이 과정에서 권력공백이 발생한 요동지역을 둘러싸고 고려와 명의 대립이 심화되어, 1388년 마침내 요동정벌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안위를 놓고 강온파가 대립한 결과, 이성계는 군대를 회군시켜 최영을 제거했다. 처음에는 회군의 정치적 의미가 대외정책상의 대립, 특히 최영의 책임추궁에 한정되었다. 그러나 곧 이어 내정과 관련된 전통적 정치세력들의 ‘복구’노선과 이성계파의 ‘개혁’노선, 그리고 개혁의 심도와 관련된 우왕과 창왕의 정통성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이 시기의 정쟁에는 생사를 건 권력투쟁 속에 복잡한 형이상학적 이념논쟁이 개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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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09-340-017358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