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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사군육진 개척은 고구려의 패망 이후 계속 위축되어 오던 우리의 북방영토를 다시 확장시킨 조선왕조 최대의 국가프로젝트였다. 세종의 최대 업적의 하나인 이 국가사업은 많은 반발과 저항에 부딪쳤다. 여진족과의 전투, 백성들의 삶의 터전 이전, 장거리의 축성(築城)사업은 백성들의 안전한 삶[爲民]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정당화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노민(勞民)’을 요구하는 국가의 장기 프로젝트였다. 이 과정에서 ‘백성을 위하는 정치’와 ‘백성을 수고롭게 하는 정치’ 사이에서 갈등하고, 설득하는 세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사민입거(徒民入居)라 불린 대규모 이주정책은 이주를 꺼리는 사람들의 회피ㆍ자살ㆍ도망과 같은 난관에 부딪쳤다. 과연 세종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그 프로젝트는 성공했는가. 과연 훌륭한 정치가의 평가 기준은 무엇인가(사후적 업적과 당시대의 평판 사이). 이 연구는 아울러 경원부의 지휘부를 후퇴할 것인지 아니면 극변에 그대로 배치할 것인지를 둘러싼 군신간의 논쟁을 살피고, 국왕 세종의 변경관과 영토경영의 목표를 고찰했다. 그 결과 세종은 백두산을 우리 영토 안에 있는 것으로 인식했고, 또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 백두산에 ‘겨레의 영신(靈山)’이라는 상징성을 불어넣는데 성공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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