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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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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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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언론학회 한국언론학보 韓國言論學報 제46권 1호
발행연도
2001.12
수록면
194 - 228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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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는 신문의 보도내용에 대한 통제를 훨씬 더 강화하고, 통제체제도 더욱 체계화시켰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일제는 일부 신문에 대한 개편 작업과 함께 총독부 기관지를 강화하는 정책도 실시했다. 당시 신문들이 겪던 용지부족과 경영난은 일제의 이런 언론통제정책이 더욱 강화되는 빌미가 되었다.
일제는 1939년 말부터 신문사 통폐합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한국어신문의 경우 한국인 발행 신문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통합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미 논조가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한국인이 발행하고 있다는 점 자체가 지니는 상징성이 혹시라도 문제가 될 것을 고려한 것이었다. 또한 《매일신보》를 중심으로 한국어 신문을 통폐합함으로써 총독부 기관지를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일제는 온갖 압력을 행사해 결국 1940년 8월 10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자진폐간 형식으로 폐간하게 만들었고, 두 신문의 영업권과 시설에 대한 보상을 해주기도 했다.
일제는 일본어 신문에 대한 통폐합도 함께 추진했다. 일제는 경영 합리화의 기반을 마련해준 후 선전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원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일본어 신문에 대해서도 통폐합을 시행했던 것이다. 물론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목적도 작용했다. 이러한 통폐합 결과 《경성일보》를 포함해 12개의 일본어 신문이 남게 되었다.
일제는 통폐합 이후 더욱 강력한 언론통제를 실시하며, 언론을 철저히 전쟁수행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통폐합 후 살아남게 된 신문들은 모두 이런 정책을 충실히 따르며 이른바 ‘보도보국’ 활동에 전력하게 되었다. 통폐합 이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의 발행부수가 급속히 늘어나, 사실상 두 신문이 완전히 지배하는 언론구조가 만들어졌다. 전쟁수행의 충실한 도구였던 두 신문이 한국인에게 끼친 부정적 영향은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목차

1. 서론
2. 중일전쟁 발발과 언론
3. 신문사의 통폐합
4. 통폐합 이후의 언론
5. 요약과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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