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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5.18연구소 민주주의와 인권 민주주의와 인권 제7권 2호
발행연도
2007.10
수록면
307 - 336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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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메이지 초기 대표적인 종교 탄압인 ‘우라카미’ 사건을 분석하였다. 이 사건은 메이지 정부가 3,000여 명에 달하는 크리스천들을 유배형에 처하자 영ㆍ불 등 외국 공사단이 이에 항의함으로써 외교문제로 비화된 사건이다. 본고는 기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우라카미 사건과 관련하여 종래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왔던 ‘국가신도’가 형성되어 나가는 과정에 주목하였다. 특히 국가신도가 형성되어 나가는데 있어 에도 막부이래 ‘전통’적 가치가 어떻게 계승되고 변용되었는가? 주로 에도 막부 등이 남긴 과거 유산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과거와의 연속성 측면에 주목하면서 이 문제를 재검토하였다.
메이지 초기 핵심 당국자의 인식은 에도 시대의 크리스트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17세기 초 시마바라의 난을 의식하고 있었고 우라카미 크리스천들을 그대로 두면 장차 내란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이 우라카미 크리스천들을 탄압하게 된 주요 요인이었다. 따라서 ‘국가신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라카미가 강조하는 근대에 새로 ‘창출’된 측면에 유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에도 시대이래 전통적 유산을 ‘계승’ㆍ발전시킨 측면도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통설적 연구와 같이 이른바 神社의 체계화(神社神道)와 황실제사의 결부라는 오로지 신도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고, 전통적 신불합일로의 회귀라는 측면도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浦上탄압사건’의 경위
Ⅲ. 탄압의 배경과 메이지 정부의 대응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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