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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학회 사학연구 史學硏究 第88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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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石正已는 자유민권론자로서 관직을 지니지 않은 채 주한 일본공사로 발탁된 특유한 경력의 소유자이자 정부각료 혹은 중의원의원으로 일본 정계의 朝野를 넘나들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그가 시대적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그 특징이 무엇인가를 살펴봄으로써 메이지 시대 일본인의 한국 인식과 더불어 그것이 일본의 대한정책에 끼친 영향을 고찰해보았다.
    大石는 주한 일본공사로 부임하기 전 한국독립 불가론ㆍ‘한반도 위협론’에 입각해서 일본이 ‘태평양의 발칸반도’인 한국을 열강의 보호국 혹은 중립국으로 만들거나 청ㆍ영국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아관파천 직후 그는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막을 계책으로 영일동맹안을 내놓았으며, 대대적인 군비확장을 전제로 러시아와 동맹을 맺으라고 제시하였다. 1903년에 그는 용암포를 발판 삼아 러시아가 한국에 세력기반을 부식시키려 하자 일본이 의주의 국경에 군대를 파견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하였다. 러일전쟁 종전 후에는 일본이 자위상 한국을 보호ㆍ통치하는 것은 동양의 균형을 유지하고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한국보호국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펼쳤다. 大石는 한국을 소국 혹은 완전한 보호국으로 만들지 못한 통감부를 쓸데없는 물건이라고 혹평하였다.
    일본의 한국국권 강탈 직후 大石는 그 방법도 전적으로 평화적이어서 아무도 불만을 내뱉을 수 없을 정도로 용의주도ㆍ수단교묘했다고 호평한 다음 통치방침으로 동화주의를 제시하고, 자치제 등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아울러 그는 총독에게 전제적 권한을 주고 총독부의 압제적ㆍ무력적 군정에 반대했지만, 한국을 영구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데 목적이 있었을 뿐 결코 일본의 식민지화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판하지는 않았다. ‘한국병합’ 사후승낙안에 강력하게 반발했던 그의 주장에도 ‘병합’ 당시 일본이 한국의 국권을 주도면밀하게 장악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던 불법성ㆍ강압성에 대해 비판이나 이의를 제기하려는 의도는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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