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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임진왜란을 계기로 성립된 비변사체제는 17세기 사림정치기에 구성과 운영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이후 조선후기 제 변화를 수용하면서 변화하였다. 17세기 비변사는 국가 고위 관료들이 국가 중요 정책은 다수의 논의에 바탕하여 협의하는 장이었고, 그 운영과 제 권력구조와의 관계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적용되는 사림정치 구조의 일부분이었다. 이때 비변사는 임진왜란을 비롯한 이후 연속적인 국가위기를 극복하는 중추관서였고, 기존 『경국대전』 체제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조선후기 새로운 사회변화를 효과적으로 대처한 점, 다수의 논의를 국정운영에 수렴한 점등의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숙종대 붕당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정치세력 간에 견제와 균형의 구도가 무너지면서 비변사의 운영도 변화되었다. 즉 외형적으로는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고 기능이 강화되었으나, 특정 붕당이 이해를 관철시키고자 함으로써 비변사에서 국정 논의가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 이러한 현상은 경종대 더욱 심화되어 비변사의 운영이 부진하고 비변사를 통한 다양한 의견의 수렴 기능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영ㆍ정조는 탕평정치를 표방하고 붕당간의 갈등을 해소하며 국정을 주도하는 방편으로 비변사의 차대를 활용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벌열세력이 비변사에 포진하여 소수 가문의 이해를 반영하고 국정을 장악하여 권력 구조 내에서 집중의 현상이 나타났다. 이 결과 강력한 왕권이 사라진 세도정치기에 세도가문이 국정을 농단하는 기반으로 삼음으로서 타파되어야 할 제일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숙종대 붕당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정치세력 간에 견제와 균형의 구도가 무너지면서 비변사의 운영도 변화되었다. 즉 외형적으로는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고 기능이 강화되었으나, 특정 붕당이 이해를 관철시키고자 함으로써 비변사에서 국정 논의가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 이러한 현상은 경종대 더욱 심화되어 비변사의 운영이 부진하고 비변사를 통한 다양한 의견의 수렴 기능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영ㆍ정조는 탕평정치를 표방하고 붕당간의 갈등을 해소하며 국정을 주도하는 방편으로 비변사의 차대를 활용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벌열세력이 비변사에 포진하여 소수 가문의 이해를 반영하고 국정을 장악하여 권력 구조 내에서 집중의 현상이 나타났다. 이 결과 강력한 왕권이 사라진 세도정치기에 세도가문이 국정을 농단하는 기반으로 삼음으로서 타파되어야 할 제일의 표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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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요약
- 머리말
- Ⅰ. 備邊司體制의 成立과 運營
- Ⅱ. 備邊司의 政治的 位相과 機能
- Ⅲ. 備邊司 運營의 變化
-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