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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22號
발행연도
2008.8
수록면
259 - 293 (35page)
DOI
10.14769/jkaahe.2008.08.2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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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개의 수권(手卷)들로 구성되어 있는 〈강희제남순도권康熙帝南巡圖卷〉은 1689년에 이루어진 강희제(재위 1662-1722)의 제2차 남순(南巡)을 그림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총 길이 197.60미터에 달하는 〈강희제남순도권〉은 강희제의 71일 간의 여행을 산수 배경 속에서 묘사한 거질(巨帙)의 궁정기록화이다. 〈강희 제남순도권〉은 표면적으로는 강희제의 강남 지방 여행 및 순시 장면을 거대한 산수 배경 속에 묘사한 궁정기록화이다. 그러나 〈강희제남순도권〉은 황제의 여행 기록을 넘어 천하태평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강희제의 정치적 열망과 포부가 담겨져 있는 그림이다. 〈강희제남순도권〉 제1권 제첨(題簽)에 따르면 강희제의 남순 목적은 황하 치수(治水) 상황 시찰, 백성들의 풍속 관찰, 지방관원들의 행정 점검이었다. 그러나 강희제의 남순은 이러한 표면적인 목적을 넘어 청제국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태평성대의 시대를 열고자 했던 강희제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관련되어 있었다. 〈강희제남순도권〉의 정치적 성격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되는 기록은 1692년에 발표한 강희제의 조유(詔諭)로 삼번(三藩)의 난, 황하 치수(治水), 대운하(大運河)를 통한 원활한 물자 교류를 국가 운영의 3가지 중대사로 규정하고 있다. 즉 강희제는 삼번의 난이라는 대규모 내전을 통해 조직화된 군사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황하의 범람이 초래하는 막대한 자연 재해의 심각성과 치수 사업을 통한 근본적인 홍수 예방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아울러 강희제는 대운하의 효율적인 관리를 통해국가 재정의 핵심이 되는 강남 지역으로부터 유입되는 세곡(稅穀)의 원활한 운송이 제국 경영의 초석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3대 과제는 〈강희제남순도권〉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로 기능하게 되었다. 제1권과 12권에 보이는 대규모 군단(軍團)를 이루고 있는 만주팔기의 모습, 제10권에 보이는 마상사술(馬上射術) 장면, 제11권에 보이는 남경의 연자기(燕子磯)를 떠나 진강(鎭江)으로 이동하는 대규모 군선(軍船)들의 모습은 삼번의 난을 통해 얻게 된 교훈인 군사력의 중요성에 대한 강희제의 성찰과 관련된다. 한편 제4권에서 강희제는 황하 치수를 통해 천재지변을 사전에 예방하고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자애롭고 인자한 유교적 천자로 자신을 표방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황하 치수 작업은 대운하의 안정적 운용과 직결되어 있었는데 제7권은 대운하를 통해 소주에 도착한 강희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주는 강남의 경제적?문화적 중심지로 대운하를 통한 강희제의 소주 방문 장면은 국가 경제의 핵심이 되는 소주 지역의 경제적 번성과 물자의 원활한 유통 모습을 통해 ‘성세자생(盛世滋生),’ 즉 태평한 시절을 맞아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는 상황이 도래했음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강희제남순도권〉에 표현되어 있는 태평성대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 그림이 제작되고 있던 당시 청조는 ‘숙황(熟荒)’이라고 하는 장기적인 경제 불황을 겪고 있었다. 숙황은 풍년이 들어 곡식은 넘치는데 구매력이 없어 곡물가격의 폭락으로 이어지는 기이한 경제 현상으로 169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이러한 숙황 현상을 타개하고 농업과 잠업(蠶業)의 육성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고자 했던 강희제의 의지는 1696년에 초병정(焦秉貞, 1680-1720년경 활약)이 황명(皇命)을 받고 제작한 〈어제경직도(御製耕織圖)〉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예찬(倪瓚, 1306-1374)의 〈계정산색도(溪亭山色圖)〉(1365년, 대만고궁박물원 소장)에 보이는 강희제의 화압(花押)인 ‘태평(太平)’은 내전과 경제 불황을 극복하고 천하태평의 이상을 실천하려고 했던 그의 정치적 비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목차

Ⅰ.
Ⅱ.
Ⅲ.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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