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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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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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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28호
발행연도
2008.3
수록면
123 - 161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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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만주지역 교회는 의화단 사건(1900년) 여파로 선교의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런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고 다시 선교의 활력을 되찾게 만든 것이 1908년 만주 부흥운동이다. 이 운동은 1907년 1월에 일어난 평양 부흥운동 현장을 목격하고 중국을 방문한 맥라렌 부인과 하남주재 선교사 고포드가 만주 심양과 요양에 들러 한국 부흥운동의 실상을 전함으로 촉발되었다. 한국교회 부흥운동 소식을 접한 만주와 중국주재 선교사들은 같은 부흥운동이 중국에서도 일어나기를 고대하며 준비 기도를 시작하였다. 특히 요양지역 선교를 담당하고 있던 더글라스는 1908년 1월 중국인 전도자 장사정과 호만성을 평양으로 파송하여 직접 평양 부흥운동의 실상을 보고 오도록 하였고 이들의 방문보고와 2월 9일부터 시작된 고포드의 요양집회에서 비로소 한국에서와 같은 토착교인들의 통성기도와 공개자복, 회개와 배상을 통한 영적 갱신, 그리고 자발적 헌금과 헌신, 자원 전도운동이 나타났다.
부흥운동을 거치면서 만주지역 교회와 교인들 사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토착 교인들은 회개와 중생, 성결에 이르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신앙 체험, 즉 ‘영적 각성’을 체험하였으며 이를 통해 교회 안에 화해와 일치, 협동과 연합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또한 은혜를 체험한 교인들의 윤리적 갱신과 실천은 기독교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선입견과 편견을 해소하였고 교회의 종교적 권위와 사회적 지도력을 향상시켰다. 여기에 토착 교인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전도운동으로 인해 무너졌던 예배당과 기독교 학교가 복구되었고 선교에 활기를 띰으로 교세는 의화단사건 이전으로 회복되었다. 요양과 심양에서 발화된 만주 부흥운동은 1908~09년 그 불길이 만주 일대로 확산되었고 1910년 4월에는 북경의 연경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도 부흥운동이 일어나 헌신적 전도자들에 의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중국교회 부흥에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준 만주 부흥운동의 동기와 단초를 1907년 평양 부흥운동이 제공했다는 점에서 한ㆍ중 양국교회 관계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870~80년대 한국교회의 복음 수용과 전파 과정에서 한글성서 번역과 인쇄 및 반포의 거점이 되었던 만주교회가 의화단사건이후 침체에 빠져 있을 때 한국교회가 부흥운동의 열기를 전함으로 위기를 벗어나 선교의 활력을 되찾도록 만듦으로 한국교회는 ‘선교의 빚’을 갚았을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아시아로’ 이어지는 신앙교류와 선교협력의 아름다운 전통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것은 19세기 일부 서구 제국주의 기독교 국가들이 추구하였던 강압적 무력을 동원한 ‘힘의 선교’가 아닌 섬김과 봉사로 이루어지는 ‘사랑의 선교’였다.

목차

1. 머리말
2. 요양교회 부흥운동
3. 심양과 만주지역 부흥운동
4. 부흥운동의 결과
5. 맺음말
참고문헌
부록 : 1900년대 만주 선교지도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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