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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이 글에서는 근대 일본 내셔널리즘의 전개 양상, 그리고 내셔널리즘이 파시즘과 초국가주의로 변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구조와 특성을 살펴보고 있다. 이같은 검토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지역주의(예컨대 동아시아공동체, 동북아공동체)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와 교훈을 던져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연원을 따져보면 ‘내셔널리즘’과 그 운동은 19세기 서구 유럽에서 등장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네이션’과 ‘nation-state (네이션 스테이트, 국민국가)’ 개념 역시 전해지게 되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외적으로 독립을 유지함과 동시에 새로운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되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했는데, 그것은 동아시아 내셔널리즘에 공통된 과제가 되었다. 일본의 경우, 그 같은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단시일 내에 열강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점차로 그 적정한 영역을 벗어나서 국가주의로 다시금 초국가주의로, 그리고 군국주의와 침략적 제국주의로 나아가는 양상을 보여 주었다. 만주사변(1931)에서 ‘종전’ (1945년 8월 15일)에 이르는 이른바 ‘15년 전쟁’ 기간이 거기에 해당된다. 그 분기점으로, 그리고 비판의 논거로서 내셔널리즘과 인터내셔널리즘이 근사하게 균형을 취할 수 있는 지점을 설정할 수 있었다. 그 같은 균형점을 벗어나 질주하게 된 일본의 파시즘은 독일,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구별되는 특성을 보여주었다. 아래로부터의 파시즘 혁명을 체험하지 못 했다는 것, 대신에 기존의 정치세력, 특히 군부와 관료층이 국가기구 내부에서 점차로 파쇼체제를 성숙시켜 갔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독자적인 계층으로서의 중간층(시민 계급)의 미약함, 시민사회의 취약함과 민주주의 관념의 미성숙이라는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전개와 더불어 일본 내셔널리즘은 극한 형태로 나아갔으며, 그것은 ‘코쿠타이’(國體)를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초국가주의’ 양상을 보여주게 되었다. 초국가주의는 일본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확산되는 형태로 투사되어, 철저한 ‘자민족중심주의’ (ethnocentrism)와 동시에 ‘세계정책’으로서의 면모도 갖는 것이었다. 그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내셔널리즘, 특히 민족해방 투쟁과 온전하게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수직적인 관계를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지난날 중국의 중화의식, 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월한 무력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그것은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받게 되는 ‘억압’을 다른 동아시아 민족, 국가들에게 떠넘긴 것, 다시 말해서 ‘초국가주의’ 하에서 볼 수 있었던 ‘억압 이양의 원리’가 국제적으로 연장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건강한 내셔널리즘의 발현을 넘어서 파시즘과 초국가주의, 그리고 마침내 침략전쟁으로까지 나아갔던 근대 일본의 경험은 아주 독특한 사례라 하겠다. 아직도 불행한 ‘기억’으로 남아 있으며, 침략과 전쟁, 그리고 식민지로 뒤얽혔던 지역에서는 특히 그렇다. 지난날의 초국가주의 체험과 세계 인식은, 전통시대의 중화사상과 더불어,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지역주의’ ‘지역연합’(예컨대 동아시아공동체, 동북아공동체) 논의에서도 충분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 연원을 따져보면 ‘내셔널리즘’과 그 운동은 19세기 서구 유럽에서 등장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네이션’과 ‘nation-state (네이션 스테이트, 국민국가)’ 개념 역시 전해지게 되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외적으로 독립을 유지함과 동시에 새로운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되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했는데, 그것은 동아시아 내셔널리즘에 공통된 과제가 되었다. 일본의 경우, 그 같은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단시일 내에 열강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점차로 그 적정한 영역을 벗어나서 국가주의로 다시금 초국가주의로, 그리고 군국주의와 침략적 제국주의로 나아가는 양상을 보여 주었다. 만주사변(1931)에서 ‘종전’ (1945년 8월 15일)에 이르는 이른바 ‘15년 전쟁’ 기간이 거기에 해당된다. 그 분기점으로, 그리고 비판의 논거로서 내셔널리즘과 인터내셔널리즘이 근사하게 균형을 취할 수 있는 지점을 설정할 수 있었다. 그 같은 균형점을 벗어나 질주하게 된 일본의 파시즘은 독일,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구별되는 특성을 보여주었다. 아래로부터의 파시즘 혁명을 체험하지 못 했다는 것, 대신에 기존의 정치세력, 특히 군부와 관료층이 국가기구 내부에서 점차로 파쇼체제를 성숙시켜 갔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독자적인 계층으로서의 중간층(시민 계급)의 미약함, 시민사회의 취약함과 민주주의 관념의 미성숙이라는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전개와 더불어 일본 내셔널리즘은 극한 형태로 나아갔으며, 그것은 ‘코쿠타이’(國體)를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초국가주의’ 양상을 보여주게 되었다. 초국가주의는 일본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확산되는 형태로 투사되어, 철저한 ‘자민족중심주의’ (ethnocentrism)와 동시에 ‘세계정책’으로서의 면모도 갖는 것이었다. 그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내셔널리즘, 특히 민족해방 투쟁과 온전하게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수직적인 관계를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지난날 중국의 중화의식, 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월한 무력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그것은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받게 되는 ‘억압’을 다른 동아시아 민족, 국가들에게 떠넘긴 것, 다시 말해서 ‘초국가주의’ 하에서 볼 수 있었던 ‘억압 이양의 원리’가 국제적으로 연장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건강한 내셔널리즘의 발현을 넘어서 파시즘과 초국가주의, 그리고 마침내 침략전쟁으로까지 나아갔던 근대 일본의 경험은 아주 독특한 사례라 하겠다. 아직도 불행한 ‘기억’으로 남아 있으며, 침략과 전쟁, 그리고 식민지로 뒤얽혔던 지역에서는 특히 그렇다. 지난날의 초국가주의 체험과 세계 인식은, 전통시대의 중화사상과 더불어,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지역주의’ ‘지역연합’(예컨대 동아시아공동체, 동북아공동체) 논의에서도 충분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본문·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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