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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학학회 동학연구 동학연구 제6집
발행연도
2000.3
수록면
1 - 24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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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화약 이후 농민군은 소속 군현으로 돌아가 폐정개혁 등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전국은 비교적 평온하였다. 그런데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농민군은 즉각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반일봉기를 준비하였다. 이런 봉기준비는 곧바로 전국적인 봉기로 전환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전봉준, 최시형 등 조선왕조 체제를 인정하고 그 체제내에서 개혁하려는 지도자들이 섣불리 봉기하였다가는 일본군의 볼모상태인 고종의 목숨이 위태롭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봉기를 제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집단은 봉기를 지시한 국왕의 명령을 받자마자 조선왕조를 수호하기 위한 반일봉기를 추진하였다.
한편 조선왕조를 전복하고 새왕조를 건설하려는 김개남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농민군의 반일봉기 움직임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2차 기병을 추진하였다. 그 까닭은 이 집단의 봉기목적이 새왕조 건설이었으므로 조선왕조의 상징인 국왕의 안위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목차

논문개요
Ⅰ. 머리말
Ⅱ. 경복궁사건 직후 농민군 및 동학지도부의 동향
Ⅲ. 동학지도부의 제2차 起兵 추진과 그 성격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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