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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07 봄호 제30권 제1호 (통권 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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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한국에서는 박정희시대 중반기에 ‘동상건립운동’이 전개되었다. 동상들은 서울 도심의 일상생활공간에 주로 건립되었다. 이 연구는 ‘동상건립운동’을 주도한 주체의 구성적 특성, 소요 자원들의 동원, 동상이 건립된 인물과 건립시기의 특성을 고찰하였다. 이어서 ‘애국주의’라는 관점에서 동상에 부여된 담론들을 검토하고, 이 운동의 성과와 효과를 분석하였다.
    동상 건립은 비록 ‘운동’으로 명명되었으나, 박정희 정권과 공화당, 이들과 일체화된 언론, 친일 혐의를 갖고 있는 다수의 지식인과 예술인, 그리고 정경유착으로 부를 축적한 경제인들의 합작품이었다. ‘선각자’로 호명된 동상의 인물들은 각 시대와 부문들에서 선정되었다. 그러나 인물들의 선정 기준과 이유는 불분명하고, 일관성이 없었다. 동상들은 박정희 정권의 안정화와 정통성 확립이 필요한 시기에 주로 제막되었는데, 중요하게 고려된 사건은 ‘5ㆍ16’, ‘광복’, ‘3선 개헌’이었다.
    동상들에 가장 많이 투사된 담론은 경제건설(근대화)과 승공(민족)통일이었다. 동상의 담론은 일정한 변화를 보여주는데, 박정희 정권이 사회구성원들에게 요구한 지배담론이 무엇이었는가를 알려준다. ‘동상건립운동’은 이순신 및 세종과 같은 특정 인물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다른 국가적 기념사업들의 효과가 집중 및 중첩된 결과로 해석된다. 각 동상들에 투사된 지배담론의 부합성, 담론의 전달 구조와 통로, 동상의 위치와 변화, 담론의 수용 등의 측면에서 보면, 이 운동의 효과는 박정희 정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사회구성원들은 ‘동상건립운동’을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않았으나, 무관심과 비수용적 태도를 견지하여 이 운동의 효과를 축소시키거나 무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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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10-151-001725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