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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경령전이라는 원묘를 두었는데, 여기에는 태조와 현 국왕 직계 4대친의 진영을 모셨다. 경령전은 현종대에 송의 경령궁을 본떠 만들었는데, 대체로 현종 12년에 궁궐 중건과 함께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종이 경령전을 둔 것은 태조 숭배를 통해 왕통의 정당성을 확립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경령전의 위치에 대해 ??高麗古都徵??의 기록을 근거로 경령전이 구정 가까이에 있었다거나 내전구역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검토 결과 경령전은 내전 구역의 내제석원과 인접해 있었고, 특히 가장 가까운 건물은 십원전(十員殿)이었던 것을 확인하였다.
경령전은 현 국왕의 직계 조상을 모신 곳임으로 오히려 태묘보다 더 중하게 취급되었다. 고려왕은 즉위, 나라와 왕실의 대소사를 경령전에 고했다. 경령전 제례의 절차는 태묘의 것을 따랐으며, 섭사의 경우 태묘와 마찬가지로 재상이 행하였다. 의례 절차를 보면 경령전은 태묘와 같은 위상을 가졌으며, 태묘와 같이 대사로 행해졌다.
고려에서 태묘 이외에 별도로 원묘인 경령전을 두었고, 태묘와 경령전을 모두 대사(大祀)에 둔 것은 조선의 경우와 비교된다. 조선은 종묘만을 대사로 두고, 이를 왕실 조상 숭배의 중심으로 삼았다.
한편 경령전의 위치에 대해 ??高麗古都徵??의 기록을 근거로 경령전이 구정 가까이에 있었다거나 내전구역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검토 결과 경령전은 내전 구역의 내제석원과 인접해 있었고, 특히 가장 가까운 건물은 십원전(十員殿)이었던 것을 확인하였다.
경령전은 현 국왕의 직계 조상을 모신 곳임으로 오히려 태묘보다 더 중하게 취급되었다. 고려왕은 즉위, 나라와 왕실의 대소사를 경령전에 고했다. 경령전 제례의 절차는 태묘의 것을 따랐으며, 섭사의 경우 태묘와 마찬가지로 재상이 행하였다. 의례 절차를 보면 경령전은 태묘와 같은 위상을 가졌으며, 태묘와 같이 대사로 행해졌다.
고려에서 태묘 이외에 별도로 원묘인 경령전을 두었고, 태묘와 경령전을 모두 대사(大祀)에 둔 것은 조선의 경우와 비교된다. 조선은 종묘만을 대사로 두고, 이를 왕실 조상 숭배의 중심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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