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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기장지역 도자기의 생산과 의미를 검토하였는데, 이를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장지역은 최근 활발한 시굴을 통해 삼국시대 토기를 생산하였던 곳임이 밝혀졌다. 고려ㆍ조선시대에는 더욱 활발하게 도자기를 생산하였던 곳이었다. 이는 여러 곳에 분포하는 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렇게 기장지역이 도자기를 활발하게 생산할 수 있었던 배경은 시목ㆍ시토 등과 무관하지 않고, 『경상도속찬지리지』「장안리 자기소ㆍ도기소」의 기록과도 부합한다.
둘째, 기장지역은 ‘蔚山長興庫’ㆍ‘蔚山仁壽府’ㆍ‘蔚山仁’ㆍ‘耕負祭’ 명의 출토 명문을 통해 도자기 생산의 의미를 너무나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도자기 생산지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의미가 있다. 기장지역은 공납용분청사기를 생산하였고, 이러한 자기를 지역의 민간에 유통시켰다는 점이다. 이는 기장지역의 조선시대 분묘 및 수혈지에서 분청사기가 출토되고 있는 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분원 설치 이후 기장지역은 일정기간 분청사기를 생산하였지만, 점차 백자를 중심으로 생산하였다.
셋째, 기장지역의 도자기는 조선시대 왜관을 통해 일본에 교역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진해 두동리 유적의 명문 분청사기가 인근의 제포왜관에서 교역되었다는 점에서, 기장지역에서는 비슷한 시기 분청사기를 생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염포ㆍ부산포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교역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기장지역 도자기는 조선후기 왜관에서 기장 사기장의 파견 요청을 고려할 때 17세기 초량왜관을 통해 교역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왜관의 도자기 생산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첫째, 기장지역은 최근 활발한 시굴을 통해 삼국시대 토기를 생산하였던 곳임이 밝혀졌다. 고려ㆍ조선시대에는 더욱 활발하게 도자기를 생산하였던 곳이었다. 이는 여러 곳에 분포하는 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렇게 기장지역이 도자기를 활발하게 생산할 수 있었던 배경은 시목ㆍ시토 등과 무관하지 않고, 『경상도속찬지리지』「장안리 자기소ㆍ도기소」의 기록과도 부합한다.
둘째, 기장지역은 ‘蔚山長興庫’ㆍ‘蔚山仁壽府’ㆍ‘蔚山仁’ㆍ‘耕負祭’ 명의 출토 명문을 통해 도자기 생산의 의미를 너무나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도자기 생산지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의미가 있다. 기장지역은 공납용분청사기를 생산하였고, 이러한 자기를 지역의 민간에 유통시켰다는 점이다. 이는 기장지역의 조선시대 분묘 및 수혈지에서 분청사기가 출토되고 있는 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분원 설치 이후 기장지역은 일정기간 분청사기를 생산하였지만, 점차 백자를 중심으로 생산하였다.
셋째, 기장지역의 도자기는 조선시대 왜관을 통해 일본에 교역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진해 두동리 유적의 명문 분청사기가 인근의 제포왜관에서 교역되었다는 점에서, 기장지역에서는 비슷한 시기 분청사기를 생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염포ㆍ부산포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교역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기장지역 도자기는 조선후기 왜관에서 기장 사기장의 파견 요청을 고려할 때 17세기 초량왜관을 통해 교역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왜관의 도자기 생산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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