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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민속학회 실천민속학연구 실천민속학연구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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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 28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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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본 고는 해방 이후 판소리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명창 공대일을 조사ㆍ연구함으로써, 광주 지역에서 전승되던 소리의 일단을 밝혀 판소리사의 불충분한 부분을 보완하고 실증하고자 하였다.
전남은 서편제, 보성소리의 발원지이자, 수많은 명창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광주는 전남지역의 중심도시로써 판소리를 전승시키고, 공부하고, 또 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자 많은 명창 및 소리꾼들이 모여들었던 판소리의 성지였다. 일제시대 예기양성소로 유명했던 광주권번은 판소리 교육의 중심이었으며, 해방 후에는 광주성악연구회, 호남국악학원, 전남민속예술학원 등 많은 단체들을 통해 판소리가 공연되고 향유되었다. 광주권번이 형성된 이후부터 1960년경까지 광주는 판소리의 지역 거검 역할을 하였다.
이 시기 공대일은 광주를 지역적 기반으로 하여 판소리의 전승과 교육을 담당한 인물로 주목된다. 그는 광주판소리의 최대 전성기에 광주에서 활동하며 많은 제자를 가르쳤고, 서울을 중심으로 명인ㆍ명창들이 활동을 하던 시기에도 계속 광주에 머물면서 판소리 교육에 힘썼다. 무대 활동 보다 후진 양성에 노력을 기울인 관계로 명성과 재물 등은 따르지 않았으나, 광주판소리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다른 명창들보다 많은 제자들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광주 판소리를 더욱 활성화 시켰다. 다시 말해 공대일은 광주 지역의 대표적인 국악학원에서 30여년 간을 활동하며, 광주판소리의 전승과 활로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공대일은 광주라는 지역에 묻혀서 빛을 바래지 못했던 옥석이다. 그의 딸인 공옥진의 유명세에 힘을 얻어 광주라는 곳에 판소리 명창 공대일이 있었다는 존재감이 남게 되었지만, 그에 대한 연구는 잠깐의 언급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출생, 탯자리, 활동까지 제대로 남아있는 자료가 없어 여러 가지 논란을 야기했고, 삶의 족적은 그와 함께 활동했던 그 지역의 예술인들에게 구술로써 전해들은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밖에 상황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글을 통해 공대일이 광주판소리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 중의 한명임을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광주판소리의 큰 줄기에는 孔家(공창식, 공대일, 공기남)의 힘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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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국문초록〉
  2. 1. 머리말
  3. 2. 공대일의 생애와 예술 활동
  4. 3. 판소리사적 의의
  5. 4. 맺음말
  6.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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