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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종교개혁사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아온 사람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뮌처(Thomas Muntzer, 1488?-1525)이다. 전자는 중세의 기독교 질서를 흔들어 놓은 개혁자였고, 후자는 중세의 봉건질서를 무너뜨리고자 농민봉기를 주도한 혁명가였다. 두 사람은 처음에 뜻을 같이 하는 동지였으나 끝내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적대자가 되었다.
양자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루터가 성서주의자라면 뮌처는 성령주의자이다. 루터의 개혁은 종교적ㆍ이론적이며 위로부터의 개혁을 목표로 하였고, 뮌처의 개혁은 실천적ㆍ행동적이며 밑으로부터의 개혁을 목표로 하였다. 정치적으로 루터가 이원론적인 두 왕국론을 주장했다면, 뮌처는 일원론적인 천년왕국론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루터는 폭력에 의한 현실개혁에 반대하고 현상유지를 지지하였고 뮌처는 새로운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는 무력혁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였다.
요컨대 루터는 사회개혁적 측면에서 보수적이었지만 종교적으로는 중세의 정신질서를 무너뜨린 혁명아였고 뮌처는 의식과 행동이 급진적이었으나 가시적인 역사적 변화를 초래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양자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루터가 성서주의자라면 뮌처는 성령주의자이다. 루터의 개혁은 종교적ㆍ이론적이며 위로부터의 개혁을 목표로 하였고, 뮌처의 개혁은 실천적ㆍ행동적이며 밑으로부터의 개혁을 목표로 하였다. 정치적으로 루터가 이원론적인 두 왕국론을 주장했다면, 뮌처는 일원론적인 천년왕국론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루터는 폭력에 의한 현실개혁에 반대하고 현상유지를 지지하였고 뮌처는 새로운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는 무력혁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였다.
요컨대 루터는 사회개혁적 측면에서 보수적이었지만 종교적으로는 중세의 정신질서를 무너뜨린 혁명아였고 뮌처는 의식과 행동이 급진적이었으나 가시적인 역사적 변화를 초래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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