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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62號
발행연도
2009.6
수록면
69 - 9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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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왕족의 시신을 매장하는 거대한 무덤을 많이 만들었는데 이중에서 왕과 왕비의 무덤을 陵이라 하였다. 불교를 숭상하였던 신라나 고려의 왕릉과는 달리 조선의 왕릉은 유교의 영향으로 禮制的 의미가 중요했다. 왕릉의 형식은 조선 초에 이미 고전적인 전통이 확립되었고, 후대에도 이것을 따랐다. 그 결과 조선시대의 왕릉은 오랜 시기를 거치면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단순한 외형과 간단한 구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보수성과 지속성은 古禮를 중시하는 유교 의례를 일관되게 시행한 결과다. 조선시대의 왕릉의 외형은 변하지 않았지만 세부적으로는 변화가 많았다. 봉분의 배치 형식이나 크기, 석조물의 양식과 크기는 정해진 규정을 엄격하게 따르지 않았다. 이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왕릉의 상고적이고 지속적인 성격을 예제적 측면을 염두에 두고 중국 명청대의 황릉과 비교 검토한다.
중국의 황릉은 송, 명, 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宣祖는 중국처럼 왕릉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찾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또한 중국과 비요하여 조선 왕릉은 풍수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봉분 구조의 취약성으로 인하여 자주 遷葬하였다. 명청대의 황릉은 현실의 궁궐을 모방하여 거대한 규모로 복잡한 건축물을 세웠으며 시신이 묻히는 봉분보다는 제사가 행해지는 獻殿을 중시했다. 그러나 조선 왕릉은 부속 건축물이 적었고 봉분이 계속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중국 황릉의 지하 구조는 생전의 화려한 생활을 재현하여 거대하게 만들었으며, 수많은 부장품을 넣었다. 그러나 조선의 왕릉은 초기에 간단한 石室에서 더욱 검소한 灰隔으로 玄宮을 만들었고 부장품도 적은 수량을 넣었다.
조선시대의 왕릉은 외형상으로는 간단하지만, 주변의 자연환경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인공적인 구조이다. 조선시대 왕릉과 관련한 상장례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있지만 정작 봉분이나 현궁의 제작과 형식에 대해서는 기록이 희소하다. 조형적인 측면에서는 정해진 법규와 관습을 충실히 따르면 되는 것이었고 의례에 어긋나는 변형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의례와 상관없는 변화인 경우는 오히려 제한받지 않았다. 예제를 유지시키는 반복과 지속이 왕릉을 커다란 변화가 없는 기념물로 남겨놓은 것이다. 이 점에서 중국 명청대 황릉과 비교하면 조선 왕릉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시대의 변화와 정치적 역할에 따라 규모와 형식이 바뀌는 중국의 황릉과 달리, 조선의 왕릉은 과거의 고전적인 사례를 그대로 따랐다. 그 결과 조선 왕릉은 예제의 측면이 훨씬 중요하였고, 조형적인 고려는 우선시되지 않았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시대 왕릉의 현상
Ⅲ. 조선시대 왕릉의 특징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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