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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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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선도문화 仙道文化 제9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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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 32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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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는 단순하게 고려와 명나라의 국경선 확정에 머무르지 않고 고려의 고토회복에 가장 큰 장애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고려에서는 이 철령위 설치를 어떻게 막아내느냐에 따라 원에게 빼앗겼던 고토를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는 중요한 사안이 된 것이다.
고려는 이 중요한 사안을 결국 명나라와 전쟁으로 해결하고자 요동으로 군사를 출병시켰다. 이것은 결국 철령위가 요동 어딘가에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한국학계에서는 철령위가 중국의 요동이 아닌 한반도의 원산만 지역으로 비정하여 한국사의 큰 혼란을 자초하였다. 물론 이런 견해의 시발은 한국학계가 아니고 일본학계였다. 과거 대일항쟁기에 일본학자들이 한국사를 식민사관에 의하여 한반도 안으로 축소시키는 과정에서 오늘날 강원도와 함경남도 경계에 있던 철령지방을 찾아내어 그곳이 철령위를 동쪽 경계라고 주장을 하였고, 한국학계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아예 철령위 위치를 원산만 부근으로 고정시켰던 것이다. 이로써 여말선초의 국경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전체 국경선과 조선시대 국경선 획정에 큰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이에 글쓴이는 여러 가지 자료를 검토하여, 고려와 명나라 간의 가장 큰 문제였던 철령위는 오늘날 중국 요녕성 본계시 일대라고 고증 하였다.
보충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하겠지만 철령위 위치가 오늘날 중국땅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 그와 더불어 쌍성총관부 문제도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인식했던 쌍성총관부 자리는 그간 알고 왔던 한반도 내의 철령위 자리였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철령위위치와 쌍성총관부 자리는 연결시켜 연구를 해봐야 할 것이다.
이들 문제들과 아울러 기회가 된다면 우리 학계에서는 고려시대 국경선 연구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기술한 고려사에는 고려의 국경선이 북쪽으로는 선춘령, 서쪽으로는 고구려를 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들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시대 국경선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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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국문요약】
  2. Ⅰ. 머리말
  3. Ⅱ. 한국학계의 철령위 위치에 대한 이해
  4. Ⅲ.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의 배경
  5. Ⅳ. 철령위 위치에 대한 고증
  6. Ⅴ. 맺음말
  7. 【참고문헌】
  8.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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