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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하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59
발행연도
2010.9
수록면
293 - 32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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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660년에 백제를 이어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당과의 전쟁을 통해 676년에 임진강 이남의 백제를 통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신라의 삼국통일과 관련하여 설명되고 있는 일통삼한의 실상과 의식을 살펴보기 위해 다음의 두 가지 문제를 검토했다.
첫째, 신라의 중대 왕실은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을 어떻게 인식했는가의 문제이다. 신라와 당은 서로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중대 왕실은 외환의 대상이던 두 나라의 멸망 상황을 고구려와 백제의 평정으로 인식했을 뿐, 아직 일통삼한으로는 의식하지 않았다. 평정의 내용도 인민과 영토를 아우르는 통일의 의미는 아니었고, 왕도 사비성과 평양성이 함락한 상황에 유의한 것일 따름이었다.
둘째, 신라의 중대 왕실은 어떻게 일통삼한을 의식하게 되었는가의 문제이다. 신라가 당과의 전쟁을 통해 백제 통합을 이룬 뒤에 일통삼한의식이 발생했고, 안승의 보덕국을 흡수한 후에 고구려를 포함하는 일통삼한의식으로 전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일통삼한의식은 종묘와 사직으로 상징되는 왕조의 통합에 기초한 것으로서, 신문왕은 김유신계와 협력하여 당을 상대로 묘호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일통삼한을 의식하게 되었다.
결국 일통삼한의식은 왕조 중심의 인식으로 인해 역사적 사실과 괴리를 보인 신라 지배층의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을 융합하려는 정치적 이념으로서의 기능 때문에 일통삼한의식은 신라 말기까지 지속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중대왕실의 麗ㆍ濟平定認識
Ⅲ. 나ㆍ당전쟁과 一統三韓意識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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