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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후삼국 시대의 궁예는 왕건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졌었음에도 불구하고 왕건에게 정치적으로 패배함으로써 역사 속에 부정적인 인물로 각인되어 있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인물이 궁예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역사 기록에서 볼 수 있는 궁예의 부정적 이미지는 이긴 자의 편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반면에, 궁예가 태봉국을 세워 통치를 했던 철원지역에 구전되는 설화는 궁예에 대한 상반된 가치 평가를 수반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지만, 대체로 궁예를 긍정적인 연민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궁예에 관한 진실을 구명하기 위해서는 궁예 관련 역사 기록은 재조명될 필요가 있으며, 아울러 궁예에 관한 구전 설화 역시 설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그 문맥의 의미를 깊이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궁예와 왕건에게서 유사한 탄생의 이야기를 볼 수 있지만, 궁예의 신비로운 탄생은 상서롭지 못한 징후로 판단되어 궁예의 불행한 삶의 근거로 작용하고, 왕건의 경우 전형적인 영웅의 탄생으로 판단된다. 유사한 탄생 비화에 대한 이런 상이한 해석은 역사가 이긴 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예이며, 궁예에 대한 역사의 악의적인 횡포라고 할 수 있다.
역사 기록은 특히 왕건이 세력을 확장하여 궁예를 전복시킬 즈음부터 궁예의 비인간적인 포학무도한 면을 부각하는 서술에 치중하고 있다. 궁예의 비정상적인 행위에 대한 기술은 왕건이 고려태조로 등극한 사실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작용한다. 즉 역사에 기록된 궁예의 폭정과 잔학함은 왕건의 혁명을 정당화하는 장치인 것이다. 반면에 왕건에 대한 역사의 기록과 이를 바탕으로 한 평가는 과장되었다고 볼 만큼 매우 호의적이다. 이 과정에서 왕건이 집권할 수밖에 없었다는 필연성을 위해 설화적 서술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철원지역 궁예관련 구전 설화의 전승자들은 역사에 기록된 궁예의 폭정이라든가 백성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혹평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혹평에 대한 이러한 부정은 철원지역에서 궁예는 나라를 세웠다가 몰락하고 패배한 인물이었지만 백성들의 편을 들어줄 민중의 영웅으로 인식되었던 측면도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궁예의 죽음을 비장한 영웅의 비장한 죽음으로 승화시키고, 또한 궁예가 태봉국을 세워 신라시대 신분의 장벽이었던 골품제도를 없애고 백성들을 능력에 따라 등용했다는 논평에 가까운 전승자들의 진술은 궁예에 대한 진정한 역사적 실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궁예와 왕건에게서 유사한 탄생의 이야기를 볼 수 있지만, 궁예의 신비로운 탄생은 상서롭지 못한 징후로 판단되어 궁예의 불행한 삶의 근거로 작용하고, 왕건의 경우 전형적인 영웅의 탄생으로 판단된다. 유사한 탄생 비화에 대한 이런 상이한 해석은 역사가 이긴 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예이며, 궁예에 대한 역사의 악의적인 횡포라고 할 수 있다.
역사 기록은 특히 왕건이 세력을 확장하여 궁예를 전복시킬 즈음부터 궁예의 비인간적인 포학무도한 면을 부각하는 서술에 치중하고 있다. 궁예의 비정상적인 행위에 대한 기술은 왕건이 고려태조로 등극한 사실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작용한다. 즉 역사에 기록된 궁예의 폭정과 잔학함은 왕건의 혁명을 정당화하는 장치인 것이다. 반면에 왕건에 대한 역사의 기록과 이를 바탕으로 한 평가는 과장되었다고 볼 만큼 매우 호의적이다. 이 과정에서 왕건이 집권할 수밖에 없었다는 필연성을 위해 설화적 서술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철원지역 궁예관련 구전 설화의 전승자들은 역사에 기록된 궁예의 폭정이라든가 백성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혹평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혹평에 대한 이러한 부정은 철원지역에서 궁예는 나라를 세웠다가 몰락하고 패배한 인물이었지만 백성들의 편을 들어줄 민중의 영웅으로 인식되었던 측면도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궁예의 죽음을 비장한 영웅의 비장한 죽음으로 승화시키고, 또한 궁예가 태봉국을 세워 신라시대 신분의 장벽이었던 골품제도를 없애고 백성들을 능력에 따라 등용했다는 논평에 가까운 전승자들의 진술은 궁예에 대한 진정한 역사적 실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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