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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미숙 (목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34호
발행연도
2011.3
수록면
165 - 19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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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선교사 마렌 보딩(Maren Bording, 한국명 보아진)은 1923년 미 감리회 해외여선교회(The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 의해서 공주로 파송받았다. 공주로 오자마자 공주에서 의료선교를 하고 있던 파운드(Norman Found)와 함께 순회 방문 진료를 시작하였다. 집집마다 부녀자와 아기들의 진료를 하던 가운데 먹을 것이 없어 생명 부지뿐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가지 못하던 한국유아들을 목격했다. 파송된 이듬해인 1924년 본격적으로 유아복지(Infant Welfare) 사업을 착수 하였다. 우선 진료소 방 한 칸에서 ‘유아진료소’를 시작하였다. 아기들의 질병과 건강관리를 주로 하였다. 유아를 위한 순회 방문 진료 역시 계속해 나갔다.
그러나 영양부족으로 인하여 사망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경우는 여전하였다. 이윽고 시작한 것이 ‘우유급식’사업이었다. 그녀는 보고서에서 “나는 1살 내지 3살짜리 아이가 하루에 1~2병의 우유를 먹을 수 있다면,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데 있어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1926년 6월에 공주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우유급식소(Milk Station)’를 정식으로 열었다.
공주의 유아복지와 우유급식사업의 성과는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2~3년만인 1927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전체 사망률 35%에 비하여 공주의 유아복지 혜택을 받는 유아 사망률은 5%라고 보고할 정도였다. 이 사업은 다른 선교지역인 서울과 제물포, 평양, 해주로 확대되었다. 공주유아복지사업은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소녀들에게는 위생학을 가르쳤고, 1927년 봄에는 공주유아복지센터(영아원)에 공중위생간호 학원(Post-Graduate Course)이 설립하였다. 또 다른 새로운 특색 사업으로 산전(産前) 클리닉과 조산(Prenatal and Midwifery Care) 프로그램이 있었다. 산전클리닉과 출산, 출산 후 섭생과 신생아 돌보는 일, 우유 급식, 탁아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업에 필요한 인력 양성까지 자연스러운 시스템으로 진행되었다.
공주의 유아복지와 우유급식 사업은 1932년 공주에 있던 도청이 대전으로 옮겨가면서 대전지역에도 공주와 똑같은 사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공주와 대전에 세워진 유아복지센터를 보딩은 ‘Baby Life Saving Stations’(유아생명 구조본부)라고 불려지기를 원했다. “더 나은 건강과 더 행복한 가정을 위해 손을 펼치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를 도우며 영향력을 끼치게 하기” 위해서였다. 선교사 보딩의 ‘아기 생명 사랑’에는 국경이 없었다. 암울했던 민족적 상황에서 버려지고 방치되어 있던 충남을 아우르는 공주와 대전지역의 조선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모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던 일본아이들까지 돌봄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다.

목차

1. 머리말
2. 공주지역 유아복지와 우유급식소(Milk Station) 사업
3. 유아복지사업의 대전 확장과 대전 유아복지센터 설립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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