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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영섭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6집
발행연도
2010.8
수록면
177 - 220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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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학회는 1908년 3월 강원도 출신의 중하급 관료들과 신지식층과 유학생들이 서울에서 창립한 애국계몽학회이다. 관동학회는 서북학회ㆍ기호학회 등 다른 학회의 활동에 자극받아 설립되었다. 관동학회는 1910년 11월 다른 학회들과 함께 중앙학교로 편입될 때까지 대략 2년 반 정도 기능을 발휘했다. 관동학회는 한말 강원도의 민족교육운동과 신교육운동을 대표하는 유일한 학회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관동학회의 설립취지는 강원도의 근대교육을 진흥하는 것이었다. 관동학회 창립자들은 서양이 동양으로 진출하고 시대사조가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에 국가의 강약과 성패는 문명개화의 달성 여부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교육을 통해 문명개화를 달성하는 것만이 한국을 일제의 침략에서 구해내고 강원도를 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강원인들이 분발하여 교육진흥에 매달려야 한다는 절대적 사명감에서 관동학회를 설립하였다.
관동학회는 강원도의 교육을 진흥하기 위해 지회와 학교를 설립하였다. 관동학회가 다른 학회들과 달리 토론회와 강연회를 중시하지 않고 지회와 학교 설립에 매달린 것은 강원도의 근대교육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관동학회는 강원 각지에 권유위원을 파송하여 군수와 유지들에게 지회 설립을 촉구하고, 이어 지회를 통해 학교를 설립해 나감으로써 교육구국운동을 강원도 전역으로 확산시켜 나갔다. 원주ㆍ강릉ㆍ춘천ㆍ횡성ㆍ양양 등 강원도 각지에 설립된 관동학회의 학교들은 근대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애국계몽사상을 고취하고 인근 지역의 학교설립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관동학회는 강원지역의 교육진흥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지는 못하였다. 관동학회의 교육사업이 중단된 것은 외적ㆍ내적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한 요인으로는 1908년부터 심해진 일제의 학회 및 사립학교 탄압정책과 관동학회의 극심한 재정난을 들 수 있다. 일제의 탄압이 거세질수록 의연금과 기부금은 줄어들었고, 이것은 다시 관동학회의 극심한 재정난과 교육사업의 침체로 이어졌다. 따라서 임원들의 정력적인 모금활동에도 불구하고 관동학회는 설립된 당일부터 해체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관동학회는 강원도에서 근대교육의 진흥과 확산에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 강원도의 근대교육은 1895년 갑오경장의 신교육정책에 의해 공립학교들이 설립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1906년 통감부가 공립학교들을 친일교육기관으로 변질시킴에 따라 많은 사립학교들이 설립되어 민족교육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이들 사립학교들은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학교 문을 닫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관동학회가 다시금 강원지역 근대교육의 재흥분위기를 조성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요컨대 관동학회는 을사늑약 후부터 경술국치까지 강원도 각지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교육구국운동 중에서 1908년 이후의 교육구국운동을 떠받드는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목차

1. 머리말
2. 관동학회의 결성과정
3. 관동학회의 운영과 재정 문제
4. 관동학회의 교육진흥활동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참고문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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