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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건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64
발행연도
수록면
323 - 361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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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신라의 김씨는 진흥왕대에 대중국 외교 관계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北齊書』에 보이는 신라왕 ‘김진흥’은 ‘왕인 진흥’으로 ‘김’은 ‘왕’의 의미이다. 김씨 왕실의 바로 앞에 있었던 다른 부계 혈통의 ‘예전 왕’들은 ‘옛 왕’ 즉 ‘석김(昔金)’에서 왕을 나타내는 ‘김’을 피하고 석(昔)만을 남겨 구분한 듯하다. 석씨에 앞서 집권하였던 왕실 계통은 시조 혁거세의 이름에 보이는 ‘광명’의 의미를 취하여 ‘박’이란 성씨로 구별하였다.
三姓은 석씨계 집단의 도태 후에 칭해진 것으로서 씨족이나 족단들이 준별되는 상태에서 賜姓하여 준 것이 아니었다. 기존 왕계에 따라 성씨를 나누고, 왕실과 친연관계가 있는 귀족들에 대하여는 부계 혈연관계에 따라 구분하여 가다가 결국 상대적 친소정도에 의해 성씨를 구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지배층은 누대의 정치적 연합과 통혼관계를 통하여 복합적인 혈연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에 중고기 성골왕실의 근친혼이 강화되며 권부의 핵심에서 도태되었던 박씨계에 대해 김씨계는 여전히 혈연적 유대감을 갖기도 하였다. 김씨 왕비가 대외적으로 박씨를 칭하기도 하고, 신라 말에는 김씨였을 가능성이 있는 신덕왕이 박씨를 칭하는 일도 나타났다. 신덕왕은 견훤이나 궁예 등이 신성한 자임을 선전하는 중에 신라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자 퇴락한 김씨왕계 대신 신라 초기 왕계인 박씨의 원손임을 천명하는 복고적 행태를 보였다.
한편, 김씨의 경우 7세기에 이르러 김알지 이외에 중국의 신화적 제왕인 소호금천씨를 시조로 보는 인식이 나타났다. 국제화의 진전 속에 왕실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정체성의 확대 시도이며, 아울러 국가 중추세력으로 등장한 가야계 김씨까지를 포괄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조를 중국의 신화적 존재로 설정하게 되자 중국의 김씨 시조인 김일제도 먼 일족 정도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당고김씨부인묘명’에는 소호금천씨를 세조로 김일제를 원조라고 하고 그의 후손들이 요동에 피난한 양 말하였다. 그런데 김씨부인이 중국내에 본관을 둔 ‘경조(京兆) 김씨’ 임을 분명히 하고 중국내 연원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묘명의 성씨 관련 내용은 재당 신라계 귀화인들의 경계인적 사고방식에서 적극 윤색된 것으로 신라 김씨 왕실의 연원을 그대로 말한 것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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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국문초록
  2. Ⅰ. 머리말
  3. Ⅱ. 신라 삼성 시조 설화 검토
  4. Ⅲ. 삼성 성씨 명(名)의 연원
  5. Ⅳ. 맺음말
  6. 참고문헌
  7.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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